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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보기] 알맹이 다 뺐는데… 원격의료 또 발목 잡혀

입력
2017.03.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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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의료로 이름도 바꿨지만

“사회적 합의 안돼” 국회서 불발

박근혜 정책 꼬리표에 갇혀

절충 못하고 사장되는 건 아닌지

원격의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법안이 또 불발됐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원격의료 도입은 완전히 물 건너갈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박근혜표 정책’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원격의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2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정부가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논의했습니다. 정부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도입 방안을 담은 개정안을 처음 낸 것은 지난 2010년인데요. 하지만 그간 의료계 반발로 입법화의 첫 관문인 법안소위에 한번도 오르지 못하고 폐기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7년 만에 처음 법안소위 테이블에 오른 겁니다.

특히 정부는 의료계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수정의견을 내놨습니다. 일단 ‘원격의료’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의료’라는 새 이름을 붙였고요. 고혈압ㆍ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를 원격의료로 ‘진단’과 ‘처방’을 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관찰, 교육, 상담만 허용을 한 겁니다. 그 밖에 정신질환자나 수술ㆍ퇴원 후 관리가 필요한 환자, 성폭력ㆍ가정폭력 피해자, 경증질환자 등은 원안과 달리 원격의료 대상에서 제외했고요. 교도소 수감자나 원양선박 승선자 등을 제외한 모든 환자에 대한 원격의료는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만 할 수 있게 못박았습니다. 원격의료가 대형병원의 돈 벌이 수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차단한 거죠.

하지만 국회는 ‘다음 회기 때 다시 논의하자’며 미뤘습니다. 회의록에 따르면 ‘전문가단체들이 모두 다 반대하는데 강행해야 하냐’(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직역단체들의 반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논의가 부담스럽다’(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는 이유였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료계 반발을 의식한 건데요. 대한의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범의료계비상대책위원회가 최근 성명서에서 “(ICT활용 의료라는) 표현 변경과 대상 축소 등의 조치는 원격의료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원격의료를 계속 추진하면 의료계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경고한 것이 한 몫 했습니다. 물론 원격의료가 수정의견 수준으로만 도입되면 의료계가 우려하는 동네의원 줄도산은 없겠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앞으로는 걷잡을 수 없다는 게 의료계 주장입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은데요. 원격의료 도입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소외계층 등이 120여만명에 이른다고 정부는 추정합니다. 한국만 기술 발전에 영원히 역행할 수 있냐는 지적도 있고요. 실제 한국과 의료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이미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원격의료를 본격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건 자칫 ‘박근혜표’라는 꼬리표 탓에 원격의료 정책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 아니냐는 건데요. 세계적 흐름에 더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료 소외층의 진료 기회를 넓혀주면서도 의료가 영리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 절충점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봐야 할 때라는 지적입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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