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28
불운이라고 해야 할 한 개인의 참담한 희생이 역류하는 역사의 물길에 저항하는 바위로 우뚝 서는 예는 드물지 않다. 1960년 4ㆍ19를 연 16세 고교생 김주열의 죽음, 87년 항쟁에 불 붙이고 기름을 부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희생…. 한없이 비통한 그 희생들을 ‘역사의 거름’(참 끔찍한 표현이다)이란 식의 긍정적 표현으로 치환하는 것은, 끝내 갚을 길 없는 공동체의 빚을 심정적으로나마 덜려는 얄팍한 시도일 것이다. 다만 그런 추상은 추모의 제단에 나란히 놓여 마땅하나, 더 은밀해서 더 참담하고 주목 받지 못한 희생들을 포괄하는 미덕은 있다.
1950, 60년대 브라질 수도 리우데자네이루 중심부에는 ‘칼라보쿠(Calabouco)’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었다. 노동당 정부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51년 문을 연 일종의 학생복지시설. 63년 집권한 좌파 조앙 골라르트 정권은 외교 독자노선을 걸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피델 카스트로를 편드는 등 미국과 거리를 두었고, 석유산업 등 주요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인플레 등 경제 사정이 악화했고, 사회 갈등도 심화했다. 64년 3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국 린든 존슨 정부는 어김없이 쿠데타군에 자금과 무기를 댔다. 군부 독재정권은 공포정치와 더불어 보수당 정권의 복지정책을 무력화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칼라보쿠 식당의 밥값 대폭 인상이었다.
브라질 북부 파라주에서 유학 온 가난한 18세 청년 이드송 루이스 지 리마 소투(Edson Luis de Lima Souto,1950~1968)가 1968년 3월 28일 그 식당 앞 시위에 가담한 것은 단지 밥값이 너무 비싸서였다. 그는 그날 시위에서 진압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은 1985년 군부독재가 종식될 때까지 이어진 브라질 시민저항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시민ㆍ학생들은 그의 시신을 지켰고, 항의 시위가 이어졌고, 그들의 뜻대로 장례를 치러냈다. 그들은 “총탄이 굶주림을 죽일 수 있는가?” “늙은 자들은 권력 안에 있고, 청년들은 관 속에 있다” 등의 문구를 새긴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수많은 이들이 이름 없이 ‘역사의 거름’이 됐다.
그의 40주기이던 2008년 3월 28일, 수도 산투스 두몽(Santos Dumont) 국제공항 인근 아나 아멜리아 광장에 이드송 루이스의 동상이 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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