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오래포럼 정책연구원장
“노동ㆍ자본 투입 통한 성장 끝나
逆인센티브 없애야 지속 발전”
베트남 측 학계ㆍ관계 발표자들
“낮은 노동생산성 개선 안 하면
부유해지기 전 늙은 나라 될 것”
정보통신(IT) 등 최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과 자본의 단순 투입을 통한 성장 시대는 끝났으며 한국 사회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역(逆)인센티브’ 구조를 바로 잡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물론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역인센티브는 공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면, 잘 하면 잘 할수록 거꾸로 불이익을 받는 성과 보상체계다.
김병준 (사)오래포럼 정책연구원장은 24일 베트남 하노이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가혁신과 동아시아의 지속발전’ 심포지엄 기조 발표를 통해 “저성장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ㆍ연구개발 역량을 제고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하지만 역인센티브 요소 제거가 선결 과제”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이날 행사는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사단법인 오래포럼과 베트남발전전략연구원(VIDS)이 공동 주최했다. 한국의 ‘성장엔진’ 점검은 물론 베트남이 한국을 벤치 마킹해 ‘패스트 팔로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한국의 시행착오와 실패까지 답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베트남 학계와 관계, 베트남 주재 한국 기업인, 각국의 오래포럼 회원 등 300여명이 모였다.
김 원장은 “한국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30달러로 주요7개국(G7)의 50달러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며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절대 비중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직원 재교육을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재교육을 통해 이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려 놓으면 임금이 높은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으로, 노동 분야의 대표적인 역인센티브로 규정했다. 특히 그는 “대기업의 60% 수준의 임금을 주고 있는 구조에서는 사실상 고칠 수 없는 문제”라며 베트남 참석자들에게 ‘연대임금제’ 도입으로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독일의 예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그는 과학기술 연구 분야의 역인센티브 구조도 반드시 제거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한국의 과학기술 투자(GDP의 4.3%), 연구인력 비율 등 과학기술연구 여건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하지만 기술 수입료는 미국의 10%, 독일 7.7%보다 한참 낮은 4.7%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그는 “성공해서 받는 실익보다 실패했을 때 받는 불이익에 대한 높은 우려 때문에 연구실적 관리자(공무원)들이 사업화 했을 때 큰 돈은 안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은 연구만 지원하고 있다”며 “베트남도 향후 예의주시 해야 할 역인센티브”라고 말했다.
남상우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베트남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임을 들어 각 분야 개혁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되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베트남 국영기업들의 과거 20년 성적표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며 “개혁이 지연될 경우 부유해지기도 전에 고령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 경제개발계획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는 VIDS 설립에 기여하기도 했던 남 교수는 노동생산성 향상과 관련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상호인정협정을 통한 숙련공의 자유로운 이동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전문자격의 표준화 및 일원화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트남 측 발표자들은 한 목소리로 자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응우옌 티 뚜에 아잉 베트남 중앙경제관리연구원 부원장은 “젊지만 전문적인 기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력이 성장을 발목 잡고 있다”며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풍부한 젊은 노동력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가경쟁력은 세계 138개국 가운데 60위 수준이다. 특히 2007~2014년 베트남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력이 평균 84%에 달한다고 밝힌 그는 직업훈련과 대학의 교육 방식을 개혁하는 데 있어 한국과의 협력을 기대했다.
응우옌 란 흐엉 베트남 사회와노동과학원 전 원장도 “베트남의 노동생산성은 싱가포르의 17분의 1, 일본의 11분의 1,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적절한 교육을 통한 노동생산성 제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고급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대졸자 116만명이 전공과 무관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에서 오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예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동화 베트남 한ㆍ베과학기술연구소(V-KIST) 원장은 “한국이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현안이 무수히 많았지만 과학 기술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점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며 베트남의 노동생산성 제고뿐 아니라 기술 습득을 통한 경제성장을 주문했다. V-KIST는 한국의 KIST를 모델로 베트남 산업화, 현대화를 견인할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연구소 설립과 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함승희 오래포럼 회장은 “유선통신망 시대를 겪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대량 보급되는 등 세상은 단계적 발전이 아닌 ‘퀀텀점프’를 하고 있다”며 “수교 25주년을 맞아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베트남이 이 같은 지구촌의 4차 산업혁명 전개과정을 유념하지 않으면 '추격자' 경제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선도국가들에 의해 포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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