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2월, 김영록(25ㆍ홍익대 4년 휴학중)씨는 덥디 더운 캄보디아를 찾았다. 세계적인 문화유적 앙코르와트 일대에서 열리는 111㎞ 정글마라톤 완주가 목적이다. 마라톤 코스보다 2.5배나 긴 비포장 정글 길을, 10㎏이 넘는 짐 가방을 짊어진 채 달려야 하는 극한의 레이스다. 30도가 넘는 날씨와 쉴 새 없는 벌레의 습격은 웃음을 잃지 않아 ‘긍정록’이라 불렸던 그에게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흘 밤낮을 달려 완주에 성공한 그는 26일 “뛰는 동안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약속’은 대학생봉사단체 소속으로 캄보디아를 찾았던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9박 10일 동안 수도 프놈펜 안찬지역에 위치한 철거민 집단거주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화장실 설치 등 보다 나은 곳으로 마을을 만드는 일정을 마무리한 뒤 작별인사를 하는 그에게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그 곳 어린이들은 한 번 찾아와 사진만 찍고 떠나는 외국인의 ‘일회성 봉사’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 해 7월, 김씨는 캄보디아 정글마라톤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무릎을 쳤다. 2013년 군 제대 후 취미 삼아 여러 차례 단축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뛰는 건 자신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캄보디아로 갈 비행기 값이 필요했고, 캄보디아 아이들을 후원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택배 물류센터, 미술학원 조소 모델, 돌잔치 사회 등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모조리 해 항공권은 구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때 50대 기업가 유모씨가 나서줬다. 국내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가 수소문 끝에 연결해준 이였다. 김씨는 “1㎞ 뛸 때마다 1만원을 아이들에게 후원해달라. 단, 완주를 했을 때만”이라고 유씨와 약속했다. 유씨로부터 받은 111만원은 현지 구호단체인 홀트드림센터에 무사히 전달됐다.
김씨는 무엇보다 1월에 만난 아이들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킨 게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단번에 알아봐줘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했다. 이번 레이스를 계기로 새로운 목표도 정했다. “사회에 진출하면, 나처럼 해외봉사의 뜻을 품은 청년들에게 크든 작든 보탬이 되고 싶어요. 선행의 선순환이 계속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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