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세상에 알려진 지 147일, 헌정사상 처음 대통령 직에서 파면 당한 지 11일 만이다.
최씨를 비롯한 국정농단 연루자 대부분은 이미 검찰 또는 특검 포토라인을 줄줄이 지나쳤다. 표정이나 포즈 또는 입에 발린 소회까지 닮아있던 이들은 포토라인을 넘은 뒤 강도 높은 조사와 구속, 재판을 겪으면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변해갔다.
구속 후 혐의를 깨끗이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하는가 하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포토라인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라며 짧은 소회를 밝힌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포토라인의 앞과 뒤, 국정농단 피의자들의 변신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1 ‘본색을 드러내다’ 최순실형
지난해 10월 31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죽을 죄를 지었다. 용서해달라”고 흐느끼던 최씨는 조사실에 들어서자마자 돌변했다.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은 물론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증언도 거부했다. 온갖 핑계를 들어 특검 조사를 회피하는가 하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포토라인 앞에서 엿보인 평범한 중년 여성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악에 받친 듯 표독스러운 이미지만 남았다. 다른 국정농단 관련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특별한 유형을 ‘최순실형’으로 분류했다.
#2 ”모릅니다, 아닙니다” 초지일관형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여기 해당한다.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시종일관 부인해 오고 있다. 언론 인터뷰와 국회 청문회를 거쳐 포토라인 앞에서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데 이어 최근 재판에서는 블랙리스트를 ‘균형 있는 문화예술 정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 및 최씨와의 뇌물공여 혐의를, 최 전 총장은 정유라씨의 특혜 입학 지원을 지시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3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책임회피형
“단 하나도 스스로 판단하고 이행한 적이 없고 모두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미르ㆍ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등과 관련해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검찰 포토라인 앞에선 당당한 목소리로 “잘못한 부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블랙리스트 작성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로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윗선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가 어려웠다”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도 책임회피형에 속한다. 책임회피를 넘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도한 인사도 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최근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로부터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 국민께 사죄 드리고 싶고 침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4 ‘겉으론 반성 혐의는 부인’ 애매모호형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해외에 머무르다 전격 귀국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지난해 11월 인천공항에 도착해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고 반성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차 전 단장은 구속 후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한편으로는 광고업체 강탈 시도 등 횡령을 제외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열린 재판에서 “입장이 도대체 뭔가”라며 차 전 단장의 모호한 태도를 꼬집기도 했다.
#5 ‘구속 후 달라졌어요’ 개과천선형
검찰 수사를 피해 지인의 집에서 은신하다 체포된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는 삼성에 후원금을 강요한 혐의를 깨끗이 인정했다. 장씨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모 최씨의 또 다른 태블릿PC를 특검에 제출하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특검 도우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체포 당시 모자를 두 겹으로 눌러쓰고 얼굴 공개를 거부한 장씨는 얼마 전 법정에서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컬 대표는 구속 초기만 해도 호흡곤란을 호소하거나 특검의 강압수사를 주장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이었으나 점차 달라졌다. 특검 수사에 협조해 온 박씨는 20일 열린 재판에서 “특검의 공소 사실을 다 인정하고 법률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서도 다 자백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6 ‘법망을 요리조리’ 법꾸라지형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은 검찰과 특검 두 차례에 걸쳐 포토라인에 섰지만 구속만은 피했다. 지난해 11월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 취재진을 쏘아본 우 전 수석은 그날 밤 팔짱을 끼고 웃으며 조사를 받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황제소환’ 논란을 일으켰다. ‘민정수석이 국정농단을 몰랐을 리 없다’는 국민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우 전 수석은 특검 포토라인에 선 채 “(최순실을) 모른다”고 주장했고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구치소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재직 중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하고 헌재의 탄핵 선고마저 불복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구속수사마저 피해 간다면 이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지 않을까.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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