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2시간 빨리 불 켜져
머리 손질 등 20분 일찍 준비
朴, 9시15분쯤 집에서 나와
“많이들 오셨네요” 혼잣말
차량 탑승 뒤 지지자들에 손인사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생애 첫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자택 불은 평소보다 일찍, 여명이 오기도 전에 켜졌지만 이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잠을 설친 듯 약간 부은 눈에 담담한 표정으로 집을 나선 박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등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했다.
검찰 출석 전날(20일) 서울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은 평상시처럼 오후 10시30분쯤 소등됐지만, 21일 1층 불이 켜진 시각은 오전 4시30분으로 평소보다 2시간 가량 빨랐다. 약 20분 뒤 꺼진 불은 오전 6시쯤 다시 들어왔다. 2층은 오전 6시30분쯤 불이 켜졌다가 꺼졌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이른 새벽부터 안절부절못하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청와대 퇴거 9일 만에 처음 집을 나서는 박 전 대통령은 평소보다 일찍 준비를 시작했다. 매일 박 전 대통령 올림머리와 화장을 담당해온 정송주ㆍ매주 자매는 다른 날보다 20분 일찍(오전 7시11분) 자택으로 들어갔다.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자택으로 들어가던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도 이날은 정씨 자매가 들어가고 30분 뒤에 등장했다.
오전 8시52분이 되자 삼성동은 술렁였다. 자택 앞에는 검은색 에쿠스와 검은색 베라쿠르즈가 대기했다. 약 20분 뒤인 오전 9시13분쯤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이 자택에서 나왔다. 이윽고 오전 9시15분 올림머리를 한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 발표 없이 “많이들 오셨네요”라며 짧게 혼잣말을 하고 차량에 탑승해 자택을 떠났다. 차량 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을 뒤따라갔다. 지하철9호선 선정릉역 방향으로 차량이 사라질 때까지 태극기와 ‘박근혜 대통령님 힘내세요’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뛰어가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지지자 일부는 전날부터 밤을 지새우며 자택 주변을 지켰다. 자택 맞은편 건물 내부 복도에서 잠든 사람들도 있었다. 전날 오후부터 자리를 지켰다는 박모(68)씨는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주범이 아니라 피해자”라며 “검찰 조사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차에 오른 뒤 볼 수 있는 위치엔 ‘빼앗긴 헌법 84조, 주권자인 국민이 되찾겠다. 자유대한민국 국민일동’이라는 현수막도 새로 내걸렸다.
이날 자택을 찾은 지지자 200여명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지지자들은 ‘고영태부터 수사하라’ ‘헌재의 무법천지’라는 등의 팻말을 들고 대통령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불쌍해서 어떻게”라며 오열하는 지지자들도 곳곳에 있었다. 그러자 삼성동 자택 앞 주택에 사는 주민이 플라스틱 원형 전등 덮개를 창 밖으로 던져, 지지자들의 고성에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12개 중대(약 1,000명) 경력을 배치했다.
그 시각 서초동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 사이 이른바 법원삼거리 일대에서는 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와 반대단체가 본격적인 세(勢)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노동당과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 청사 정문 쪽에 가까운 정곡빌딩 부근 양측 인도에서 차량과 스피커를 설치해 “박근혜씨가 있을 곳은 감옥 뿐”이라고 외치며 포문을 열었다. 이보다 50m가량 떨어진 대로변 양 모퉁이에 자리 잡은 국민저항본부(탄기국)도 뒤질세라 태극기를 흔들며 “이적검찰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들이 각각의 단체를 둘러싸서 두 단체 간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5.5㎞ 남짓 떨어진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8분만인 오전 9시23분쯤 도착했다. 전날 폐쇄됐던 서문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청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박 전 대통령 차량 진입을 기다리던 법원삼거리 부근 찬반 세력들은 허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차량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내자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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