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만 겨드랑이 털을 제모 해야 하나요?”
교육방송 EBS에 새로 편성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자리. 엄숙한 분위기를 깨고 난데없이 들려온 말에 기자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방송인 박미선이 자신이 출연하는 EBS 새 프로그램 ‘까칠남녀’를 소개하다가 돌발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EBS 봄 편성 개편 설명회에 참석한 박미선은 “여자들은 겨울에 귀찮아서 겨드랑이 털 정리를 잘 안 한다. 남자들은 이런 불편함이 없지 않으냐”며 “지금 웃으시는 여성분들은 다들 그런 경험이 있는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까칠남녀’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 등 성차별 문제를 다루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화두가 된 ‘여혐’ ‘남혐’ 논란을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풀어보자는 취지를 지녔다. 박미선은 “젠더 관련 토크라 해서 어려운 게 아니다”며 첫 주제로 선정한 ‘겨드랑이 털 제모’를 사례로 들었다.
첫 녹화에서는 솔직하고 시원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여과 없는 대화에 출연자들이 “이런 대화가 방송에 나가도 되냐”고 걱정했을 정도라고. 4시간 녹화 후 15분의 휴식 시간에도 출연자들은 쉬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까칠남녀’의 또 다른 출연자인 성우 서유리는 스무 살 이후 집안의 가장으로 사회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성으로 얻은 이득도 있고 불공정한 일들도 있었다”며 “그때의 경험을 생각하면서 방송에 임하고 있다. 재미있는 한 편의 강의를 듣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봉만대 감독은 “48년 동안 이런 방송을 늘 기다려왔다. EBS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방송 내용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이야기다. 더불어 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EBS에서 피임 등 젠더 이슈를 직설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제작진은 “성 담론도 교육”이라 생각하고 있다. 박미선은 “영어, 국어 가르치는 것만 교육이 아니다. 이런 형식은 EBS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또 “출연자들과 초면인데 목욕탕 안에서나 오갈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나눴다. 목이 쉬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EBS의 젠더 관련 토크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삼색토크 여자’라는 페미니즘 토크쇼에서 남녀 간의 오해와 편견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까칠남녀’의 김민지 PD는 “파격적인 형식이라고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삼색토크 여자’ ‘까칠남녀’는 EBS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교육 방송이 아닌가 싶다”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겪는 불평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 양성 평등 프로그램인 만큼 남성들도 공감할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BS는 올해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가족 지식 버라이어티, 신 소비계층으로 부상한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중장년층 맞춤 콘텐츠, 과학 관련 인재 양성에 필요한 창의융합교육 콘텐츠 등을 강화할 예정이다. 100만원을 들고 사라진 엄마를 찾아 전국을 누비며 엄마의 사생활과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엄마를 찾지마’, 연예인 손자와 조부모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금쪽같은 내 새끼랑’, 4차 산업혁명 시대 대중의 호기심을 풀어보는 ‘과학 다큐-비욘드’ 등 이색적인 형식의 프로그램도 신설됐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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