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피해 급증… 엄정 대응”
금융거래질서문란자 등록 검토
꽃집을 운영하는 황모씨는 지난해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다짜고짜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 “통장에 걸린 지급정지를 풀려면 합의금 50만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이 인터넷 광고에 적힌 황씨의 계좌로 5만원을 입금한 뒤 은행에 허위로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해 황씨 통장에 입출금이 막히도록 지급정지를 걸어둔 거였다. 황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남성에게 합의금을 보냈다. 신고자의 합의 없이 지급정지를 풀려면 한달 가량 시간이 걸리는 데다 황씨 명의로 된 모든 통장의 인터넷뱅킹 등이 막혀 영업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이런 수법으로 16명에게서 1,100만원을 뜯어냈다.
최근 황씨와 같은 피해 사례가 늘어나자 금융감독원이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를 하는 신고자를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엄정 대응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금융당국은 현재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급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가 은행에 신고하면 곧바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 할 수 있도록 하고, 피해금 환급을 신청하면 법적 절차 없이 피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는 피해자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신고자의 도움 없이는 지급정지를 풀기 쉽지 않다. 피해자가 은행에 직접 찾아가 피해금을 돌려받았다고 해야 지급정지가 바로 풀린다. 사기를 당한 계좌주인이 경찰에 신고해 사기계좌로 이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면 되지만 시간이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두 달 반 가량 걸린다. 계좌주인은 잘못이 없어도 이 기간 본인 명의로 된 모든 통장의 인터넷 거래가 막히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3년간 이 같은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20회 이상 전화로 지급정지를 신청한 허위신고자는 70명이며, 이들이 지급정지시킨 계좌는 6,922개나 됐다. 이 중 약 6,200개 계좌는 허위신고자가 합의금을 받고 지급정지를 취소한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허위신고 피해를 막기 위해 허위신고자를 12년간 금융거래가 금지되는 금융거래질서문란자로 등록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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