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역적)에서 아모개(김상중)를 떠나 보내던 날, 촬영장은 대본 연습 때부터 이미 울음바다였다. 연출자 김진만 PD는 미리 준비한 OST ‘상사화’를 틀었다. 아모개의 마지막 장면에 넣으려고 그간 아껴뒀던 곡이다. 스태프들은 지금도 이 노래만 들으면 울컥한다고 한다.
아기 장수로 태어난 아들 길동(윤균상)을 지켜내려고 씨종(대대로 종노릇을 하는 사람)의 운명을 거부하고 기득권에 맞서 싸운 아모개는 지난 14일 방영된 14회에서 초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아모개를 연기한 배우 김상중에게도 묵직한 여운이 남았다. 20일 서울 상암동 MBC 방송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김상중은 “‘역적’은 만남의 소중한 의미를 일깨워준 작품”이라고 의미를 되새기며 “요즘에도 재방송을 보거나 젊은 배우들과 통화를 하면 가슴이 젖어 든다”고 말했다.
아모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김상중은 “배우로서 카타르시스도 느꼈다”고 했다. 명연기에 대한 호평에 “과분한 칭찬”이라고 겸손해하면서 “그렇다고 부정하지는 않겠다”고 가볍게 농담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심 걱정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기득권층을 주로 연기했고 시사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서” 그가 그려낸 천민의 삶에 “시청자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아모개답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분장에도 특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당초 기획 단계에서 아모개가 등장하는 분량은 전체 30회 중에 초반 4회 가량이었다. 그러다 아모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설계되면서 10회 정도로 늘었고, 김상중이 아모개 역에 합류한 이후 14회까지 늘었다. 기자간담회에 동석한 김 PD는 “아모개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 13회 엔딩을 14회까지 넘어가도록 수정했다”며 “작가와 연출자가 그린 건 설계도에 불과하고 지금의 아모개를 완성한 건 김상중이다”라고 고마워했다.
김상중과 김 PD가 꼽은 명장면은 아모개가 40여 년을 모신 주인 조참봉(손종학)의 목을 베던 장면이다. 복수에 대한 통쾌함보다는 공허함이 더 짙게 밴 아모개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며 두 사람은 “단연 베스트”라고 입을 모았다. 김상중은 기억에 남는 명대사로, 극중 아모개가 길동과의 대화 도중 기득권층 인물들을 가리키며 말한 “저들은 구린내가 많이 나서 그걸 숨기기 위해 한 편이 되는 것이여”를 꼽으며 “요즘 시국과도 맞물리는 대사라 좋았다”고 말했다.
아모개의 퇴장 이후 ‘역적’은 2막에 돌입한다. 김 PD는 “드라마 제목을 ‘홍길동’이라 짓지 않은 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모개 정신’이기 때문”이라며 “후반부에는 길동이 ‘아모개 정신’을 확대 계승해 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상중도 “비록 아모개는 드라마에서 떠나지만 ‘아모개 정신’은 길동이와 그 사단이 잘 물려받을 것”이라며 “아모개가 잘 죽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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