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검찰에 소환되면 줄곧 혐의와 함께 그들이 조사 도중 먹은 점심 혹은 저녁 메뉴가 화제가 되곤 한다. 지난해 국정농단의 몸통인 최순실씨가 귀국 후 검찰에 첫 소환됐을 당시에도 그가 먹은 곰탕이 ‘누군가에게 특정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게 아니냐’며 논란이 됐다. 최근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사 도중 먹었다는 자장면 이야기가 소위 지라시를 통해 공공연히 돌기도 했다. 어떤 메뉴인지에 따라, 또 그 메뉴를 다 먹었는지 반만 먹었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신호나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돌지만,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1일 검찰소환을 앞두고, 그가 어떤 메뉴를 고를지에도 당연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독 검찰에 소환되는 일이 많았던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은 조사 도중 어떤 음식을 먹었었고,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간략히 살펴봤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곰탕’
2009년 4월30일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석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날 저녁 메뉴는 청사 근처에서 시킨 1만3,000원짜리 특곰탕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날 오후 1시30분 검찰청사 도착 일정으로 당일 오전 8시께 경남 봉화마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점심은 이동 차량에서 간단히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저녁 메뉴를 특곰탕으로 정한 건, 평소 삼계탕, 곰탕, 설렁탕 등 담백한 탕 종류 음식을 좋아했던 노 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다. 소환 전에 미리 전직 대통령 예우차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변호인)과 검찰이 메뉴를 협의해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배달음식인 만큼 노 전 대통령 소환 전날 검찰 간부들이 해당 식당을 직접 방문해 곰탕을 시식하고, 식당에서 청사 내로 배달되는 과정에서 국물이 식는지 여부도 시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전문제를 고려해 노 전 대통령 조사 당일에는 검찰 직원과 청와대 경호원을 함께 보내 음식에 대한 검수 과정을 거친 뒤 청사 내로 들여왔다.
도시락 싸온 노태우 전 대통령
1995년 11월 4,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전에 출석해 17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관계로, 이날 점심, 저녁을 모두 조사 도중 해결했다.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 검찰에 소환돼 조사 받는 피의자 및 참고인들이 대개 구내식당이나 인근 음식점에서 배달해 온 중국음식 또는 설렁탕, 된장찌개 등으로 끼니를 때운 것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싸온 일식 도시락과 죽을 먹었다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이례적으로 검찰이 이를 허용해준 것으로 보인다.
이날 도시락 반찬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평소 멸치와 함께 김치, 흰떡 등을 썰어 넣은 콩나물 국밥이나 소화가 잘 되는 아욱국 등을 즐기고,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함께 잘게 다진 떡갈비를 좋아했다는 노 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한 메뉴가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선택권 없이 교도소 밥 먹은 전두환
12·12 군사 쿠데타 및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1995년 12월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메뉴 선택권이 없었다.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다 구속돼 안양교도소에서 출장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검찰 소환이 예정된 날 오전 9시에 서울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으나, 당일 오후 11시20분께 법원이 사전영장을 발부하면서 이튿날 새벽 전격 구속됐다.
곧장 안양교도소로 압송된 전 전 대통령은 약 16.5㎡(약 5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11시40분께 검사들이 점심식사를 먼저 할지 물었으나 전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해 끼니를 거르고 조사에 임했다. 당시 점심식사 메뉴는 쌀과 보리가 8대 2로 배합된 밥에 미역국, 배추김치, 김 등 3찬으로 예정돼 있었다. 점심을 먹지 않았기 때문인지 저녁에는 점심과 마찬가지로 1식3찬으로 된 교도소 밥을 거의 다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뭘 먹을까
21일 검찰에 소환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날 뭘 먹을지, 주문한 메뉴를 다 먹을지 등에도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육식보단 채식을 즐기고, 나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조리실장이었던 손성실씨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양한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당선 후 대통합 차원에서 인수위를 구성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 이름을 따 ‘비빔밥 인수위’라 칭하기도 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물이 섞이며 조화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지역색 등을 배제해 균형 있는 인수위를 구성해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심리적 부담이 큰 검찰조사 특성상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비빔밥이나 그 외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원한다면 앞서 그랬던 것처럼 전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검찰이 최대한 이를 배려해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검찰 소환 당일 갑자기 소환에 불응한다면 앞서 전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메뉴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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