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보수후보의 부재 속에 치러지고 있는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이 '박근혜 마케팅' 경연장으로 변질되거나 일부 후보들의 저질스런 막말과 비방으로 얼룩져 보수우파 진영의 눈살마저 찌푸리게 하고 있다. 탄핵정국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당명까지 바꾸고 환골탈태를 천명한 자유한국당 주자들이 보수를 혁신할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기는커녕 앞다퉈 '친박 적자'를 자임하며 TK(대구ㆍ경북) 민심에 구걸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더구나 홍준표 경남지사 등이 당 안팎에서 쏟아내는 막말은 우리 사회의 품격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지난 주말 열린 '후보자 비전대회'에서 김진태 의원은 시종 "친박 굴레 좋습니다. 그 주홍글씨 안고 가겠습니다. 대통령 지키겠습니다"고 호위무사론을 내세워 행사장을 지배한 '태극기 부대'의 환호를 받았다. 원유철 의원 역시 "박 대통령께서 사드 배치를 위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설득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고 박심에 호소했고 태극기 집회에 꾸준히 참석해온 김관용 경북지사도 "박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이 불편하면 내가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언론인 출신의 김진 후보는 아예 "이번 대선은 박정희와 김대중ㆍ노무현의 싸움"이라고 진영 대립을 부채질했다.
더욱 볼썽사나운 것은 우파 재건을 주장하는 홍 지사의 언행이다. 그는 그제 대구서 가진 출정식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자격논란이 제기되자 "대법원에서 유죄가 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민주당 1등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그의 2차 도발에 민주당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지만, 같은 당 김진태 의원에게서도 "자살을 검토한다니, 무서워서 국민을 하겠나"는 힐난을 샀다. 최근 김 의원을 향해 "걔는 내 상대가 못돼"라고 했다가 반격당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당 대선경선이 '자성과 대안'의 축제 대신 '증오와 전복'의 반동 물결로 치닫고 주자들의 이전투구로 소란스러운데도 당지도부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파면으로 여당 지위를 잃었지만 여전히 100석 가까이 가진 원내 2당이다. 이런 정당이 이른바 '태극기 부대' 눈치를 보며 대선 후보를 뽑는 행사 하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은 존망을 묻는 문제다. 더구나 리더십 혼란을 이용해 '자기 장사'를 하는 듯한 홍 지사 등의 인물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마당이니, 보수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