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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바에즈

입력
2017.03.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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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3.20

조엔 바에즈의 아버지 알베르트 바에즈는 멋진 물리학자였다. tributes.com
조엔 바에즈의 아버지 알베르트 바에즈는 멋진 물리학자였다. tributes.com

조앤 바에즈(Joan Chandos Baez, 1941~)는 스코틀랜드 구전가요 ‘메리 해밀턴 (Mary Hamilton)’을 스코틀랜드 출신 어머니 조엔 브리지 바에즈(Joan Bridge Baez, 1913~2013)에게서 배웠을지 모른다. 습관처럼 흥얼거리는 어머니의 가락을 듣고 익숙해졌을 수도 있고, 영국 왕조사나 계급의 역사와 함께 하층 여성들의 수난사를 전해 들었을 수도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극작가였다. 그리고 물리학자였던 평화주의자 아버지 알베르트 바에즈(Albert Baez, 1912~2007)에게서 인종ㆍ성 평등과 반전ㆍ평화 사상의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알베르트 바에즈는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태어나 2살 때 감리교 목사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성장해 드류(Drew)대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시라큐스대(물리학)와 스탠퍼드대(수학)에서 석사를 땄고, 역시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위과정 중 지도교수와 함께 X선 회절현미경을 개발하는 등 X선 연구의 권위자로 각광받은 과학자였지만, 50, 60년대 냉전기 군수산업체의 파격적 제안을 뿌리치고 교육자로 남았다. 그는 견결한 평화주의자였다.

딸 바에즈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고교를 다니며 살짝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차별 현실에 눈 뜨던 무렵 아버지 알베르트는 캘리포니아 레들랜즈대 교수였다. 딸이 보스턴대를 중퇴하고 캠브리지(Cambridge)의 포크 음악클럽 ‘club 47’에서 가수로 활동하다 60년 첫 음반을 낼 무렵, 알베르트는 캠브리지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연구소에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MIT 학부교수 등을 지냈고, 유네스코에서도 일하며 중ㆍ후진국 과학교육 개선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60, 70년대 딸 조엔이 밥 딜런 등과 함께 반전 포크싱어로 활약하던 시절, 알베르트 역시 베트남 전쟁 반대 집회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어쩌면 그는 집회 현장에서 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

이민자로서, 과학자로서, 그가 소신을 지키며 버텨낸 냉전과 매카시즘의 시대는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딸은 아버지의 그 삶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알베르트는 다수의 학술 저서를 썼고, 다수의 영예로운 과학자상을 탔다.

알베르트 바에즈는 1936년 성공회 목사의 딸 조엔 브리지 바에즈와 결혼해 2녀 1남을 낳았고, 잠깐 이혼했다가 재결합해 해로하다 2007년 3월 20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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