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염전노예’ 사건 후 늘어난 실종ㆍ가출인 신고 업무에 스트레스를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관의 가족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A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공단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의 남편 B씨는 2014년 4월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공무원이던 B씨는 숨지기 두 달 전인 같은 해 2월 전북의 한 경찰서 아동청소년계로 인사발령을 받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1999년 순경으로 임용된 뒤 주로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관할 구역을 순찰하는 업무를 맡았던 B씨는 인사 전 교통관리계로 지원하길 희망했지만 여의치 않자 아동청소년계를 지원해야 했다.
업무는 생각보다 부담이 컸다. 일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지만, 그 해 2월 초엔 전남 신안군에 있는 염전에서 장애인 2명을 감금한 채 혹사시키던 주인 등이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해지자 업무량도 크게 늘었다. 게다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신안 염전노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리면서 해당 경찰서 역시 ‘민관합동 일제수색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읍시의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지만 실종 가출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은 B씨 1명뿐이었다.
B씨는 근무시간과 관계 없이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출동해 수색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조사결과 인사 발령이 난 2월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약 두 달 동안 B씨는 55시간의 시간외 근무와 3차례 휴일근무를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조짐도 보였다. B씨는 지인에게 새로운 업무를 맡게 돼 스트레스를 느낀다며 종종 “자신을 돌아보니 한심하다” “내가 참 못났다” 등의 감정을 토로했다. 유족들은 이 점을 근거로 “과중한 업무수행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사망하게 됐다”며 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공단이 “업무가 아닌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인 성향 탓”이라며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B씨가 우울 증상을 겪을 만큼 업무가 과중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B씨는 홀로 업무를 담당하며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업무를 수행했다”며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이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