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은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해
탄핵 불복하면 재평가 받기도 어려워
현실을 받아들여 승복하고 사과해야
조선시대의 임금은 자신이 훗날 어떤 식으로 역사에 남을지 두려워했다. 사관들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도 그런 유혹에 빠져 사초를 가져오라 했다가 “당대의 역사를 보는 전례를 만들면 훗날 큰 폐해가 생길 것”이라는 반발에 부닥치면서 체면을 구겼다. 누구보다 당당했던 태종 역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기록하려는 사관이 못마땅했다. 임금이 편히 있어야 할 편전에까지 몰래 들어와 자신을 엿본 사관을 귀양 보낸 것이나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 사관에게 낙마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아무리 카리스마 넘치는 임금이라도 자신이 어떻게 기록될지 걱정이 컸던 것 같다.
조선 임금 중 패악이 단연 심해 결국 폐위된 연산군은 ”인군소외자사이이(人君所畏者史而已)”라는 말을 남겼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역사뿐”이라는 이 말은 역사적 평가 말고는 두려울 게 없으니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으로도 이해되지만 연산군처럼 아무리 악독한 군주라도 역사의 평가만은 두려워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어찌 왕조시대의 임금만 역사를 두려워할까. 현대의 지도자 또한 정치를 잘 해서 자신이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기를 바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2년 전 기자회견에서 “훗날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경제 활성화를 이루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잘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날 밝힌 소망대로 그가 경제 활성화와 평화통일의 기반 닦기에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알기 어렵다.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이라는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역사는 박근혜 시대를 실패로 기록하기 십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 전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그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줄곧 보여 온 태도에 미뤄 스스로는 여전히 잘못이 없으며 언젠가 역사적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재평가가 드문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줄곧 비교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전격 방문해 관계 정상화를 이끌고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해 긴장 완화에 나섰으며 베트남전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 했다는 점이 훗날 재조명됐다. 그러나 이런 재평가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고도 혐의를 부인하며 버티다 결국 사임한 그는 3년 뒤 “친구와 국가와 정부 시스템과 공무원이 되려는 젊은이들을 실망시켰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평생 지고가야 할 짐”이라고 사과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직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역시 시간이 지나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불복의사가 두드러질 뿐이다. 이 발언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재평가 가능성을 지울 뿐 아니라 그가 여전히 현실을 잘못 보고 있다는 증거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시급한 것은 상황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헛된 미련을 버리는 일이다. 그럴 때에야 자신을 잔다르크로 치켜세우며 반드시 복권시켜주겠다는 김평우 변호사의 다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판단할 수 있다. 인간적인 정까지야 털어낼 수 없겠지만 한풀이 정치라도 할 듯 달려드는 친박 정치인을 말리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넘어 가장 중요한 일은 헌재 판결에 승복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아무리 노력한들 재임 당시 형편 없는 대통령으로 여겨지다 퇴임 후 인권 신장과 분쟁 조정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지미 카터와 같은 재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기에 따라서는 평범한 시민이 될 수는 있다. 이제라도 “국정농단은 완전히 엮인 것”이라는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민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