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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트랜스 휴먼 시대의 인간

입력
2017.03.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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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보면 미래 인간은 기계 몸을 얻어 불멸의 삶을 누린다. 이 SF 만화가 그렸던 영생의 삶은 불가능하겠지만 생명공학과 로봇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1년 2월 첫 주에 발간된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는 ‘2045년, 인간이 불멸의 삶을 얻는 해’였다.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이 기계가 인간능력을 넘어서는 시점, 즉 특이점으로 예견했던 2045년을 말한다. 인공장기가 신체를 대체하는 바이오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인명은 재천이 아니다. 인공수족, 인공심장 등 기계가 인간 몸 속으로 들어오고 있고, 인간과 기계 간 경계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신을 발명하면서 역사가 시작됐고 인공지능을 만들어 스스로 신이 되면서 현생인류의 역사는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현생인류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현생인류 이후의 인류는 누구일지 등 미래 인간에 대한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시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20만 년 전 처음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는 맹수처럼 강하지도 못하고 새처럼 날지도 못하는, 힘없는 존재였지만 도구를 만들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졌기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의 오감과 신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준 것은 과학기술이었다.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언은 과학기술의 산물인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망원경, 현미경은 인간 시각을 확장해 멀리 또는 미세한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자동차, 비행기는 인간 다리를 확장해 멀리 그리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화는 인간 청각을 확장해 멀리서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인류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는 인간 뇌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인간 신체의 일부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학설인데, 바야흐로 인간은 진화론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과 로봇 발달로 현생인류는 신체 기능을 새롭게 변화시킨 종인 ‘트랜스 휴먼’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미래학자 호세 코르데이로의 예견에도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말한 트랜스 휴먼은 과학기술이 인간 신체와 융합돼 나타나는 신인류다. 신체적, 지적으로 지금의 인간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포스트 휴먼’이라고도 한다.

알파고 쇼크 이후 일각에서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면서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미래에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이나 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더 크다. 한편으로는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의 인간화가 이뤄질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신체가 기계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기계화가 진행될 것이다. 현실을 증강한 증강현실(AR)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성, 감성, 감각을 증강한 증강인간도 보편화될 수 있다. 더 이상 ‘신체, 터럭, 살갗은 부모에게 받은 것(신체발부수지부모)’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에 얽매일 수는 없다.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정체성과 현재 인류의 정체성이 같을 수 없다. 인공지능 기계와 공존해야 하는 미래 인간의 정체성도 지금의 인간과는 다를 것이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기술문명을 버릴 것이 아니라면 첨단기술과 인간의 지속가능한 공존 조건, 미래의 윤리 문제 등을 포함해 기술과 공존·공생하는 인간상을 정립해야 한다. 과학자와 철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다. 그간 과학기술 발전은 과학과 인문학을 서로 멀어지게 해왔지만 이제 이 둘은 다시금 소통과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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