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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전립선 안장’은 틀렸다

입력
2017.03.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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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안장과 회음부 안장
일반 안장과 회음부 안장

지난번에 이어 안장통 이야기다. 거기서 자전거를 안타다가 탔을 때 나타나는 통증을 편의상 ‘뉴비통(newbie痛)’이라 부르기로 했었다. 뉴비통은 처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뿐 아니라, 시즌 동안 열심히 탔지만 겨우내 전혀 안장에 오르지 않은 동호인에게도 나타난다. 뉴비통은 기본적으로 자전거를 계속 타면 사라진다. 하지만 ‘안장통’은 이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 아니,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그때의 안장통은 뉴비통과는 좀 다르다. 그것은 장거리를 타면 어쩔 수 없이 누적되기 마련인 물리적 부담이 엉덩이 부위의 통증으로 발현한 것이다.

그런데 안장통이라고 말할 때, 정확히 어느 부위의 통증을 가리키는 걸까? 두리뭉술하게 ‘엉덩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정확한 말은 아니다. 안장통의 통증은 대개 ‘좌골 통증’과 ‘회음부 통증’으로 나뉜다. 좌골이란 골반의 아래쪽 뼈로, 양쪽 다리의 근육이 붙는 부위이면서 의자에 앉을 때 체중이 전달되는 지점이다. 엉덩이 살 안쪽에 만져지는 딱딱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된다. 회음부는 양쪽 허벅지 사이의 ‘샅’, 그러니까 항문에서 성기에 이르는 영역 전체다.

회음부 안장의 한 극단
회음부 안장의 한 극단

이 참에 꼭 짚어두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들(대부분 남성들)은 지금껏 회음부를 전립선이나 전립샘으로 불러왔다. 특히 ‘전립선 안장’은 거의 일반명사화 되다시피 했다. ‘전립선 안장’이란 안장의 가운데 부분을 세로로 파내어서 통증을 줄이고자 한 안장이다. 그런데 안장통을 말하며 전립선 운운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립선은 방광 바로 아래로 우리가 회음부라 부르는 위치보다 훨씬 더 몸 안쪽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아무리 열심히 탄다고 한 들 전립선에 직접 충격이 가해질 이유가 없다.

물론 자전거 타기와 전립선이 아예 무관하다 보긴 어렵다. 과거 사이클 선수와 생식 질환에 관한 논문들이 발표된 적이 있었고, 이 논문들이 소위 ‘자전거 고자설’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자전거를 탄다니까 “자전거 너무 열심히 타면 그... 고자가 된다면서요?”라고 진지하게 물었던 분이 있었다. 딱히 친한 분이 아니어서 나 역시 ‘한 가운데 직구’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라이딩 포지션에 따른 안장 접촉면 차이(출처: 본트래거社)
라이딩 포지션에 따른 안장 접촉면 차이(출처: 본트래거社)

최근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극단적으로 오래, 안장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면 성기능에 악영향을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설령 극단적으로 오래, 안장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전거를 탄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 압력이 바로 전립선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타구니의 신경을 압박해서 그 결과 간접적으로 전립선 등 생식기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정도다. 최근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엄청난 훈련을 소화하는 엘리트 사이클 선수들조차 운동부족인 일반인들에 비해 발기부전 비율이 낮았다고 한다.

‘전립선 안장’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남성중심적ㆍ성차별적 단어라는 점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립선은 생물학적 남성에게만 있고 생물학적 여성에겐 없는 기관이다. 남성에게 자궁이 없다는 사실은 대다수가 알고 있음에도 여성에게 전립선이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여성을 차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을지라도 회음부 통증을 전립선 통증이라 하고, 가운데가 패인 안장을 ‘전립선 안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여성 라이더들을 배제시키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요컨대 ‘전립선 안장’은 해부학적으로도 틀린 말일 뿐 아니라 성차별적 의미까지 띠는 단어다. 쓰지 말아야 한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립선 안장’ 대신 ‘회음부 안장’이라 부르면 된다.

'전립선 안장'이란 말을 써선 안되는 이유
'전립선 안장'이란 말을 써선 안되는 이유

안장통의 양상은 백 사람이면 백 가지라 할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에겐 정말 편안한 안장이 어떤 사람에겐 가시방석이다. 시중에 그토록 다양한 형태의 안장이 판매되고 있는 이유다. 접점이 좌골에 집중되는 형태의 안장은 좌골이 아프지만 상대적으로 회음부가 편하고, 회음부를 넓게 받치는 형태는 좌골이 편하지만 회음부가 쓰린 경향이 있다. 같은 회음부 안장이라도 어떤 이에겐 즉효여도 어떤 이에겐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안장 재질, 프레임 사이즈, 안장 높이와 각도, 크랭크암 길이 등에 따라 안장통 유무와 정도가 전부 다르다.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안장통과의 전쟁은 좀체 끝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몇 종류의 이질적인 안장을 다 써봤는데도 여전히 안장통이 심하다면, ‘피팅’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우 전문가에게 가서 자전거 크기나 세팅이 나의 신체와 맞는지를 처음부터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숱하게 안장을 교체하고 수백 번 안장 각도와 전후 길이를 바꿔왔지만 ‘완벽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면 신체의 상태와 형태도 미묘하게 변하기 때문에 잘 맞던 안장이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안장통과의 싸움은 자전거를 타는 동안은 결코 끝나지 않는, 그야말로 시시포스의 노동인 셈이다. 왜 이런 고통을 참아내고 또 번잡한 조정과정을 감수하며 자전거를 타는가? 그렇게까지 하며 자전거를 탈 필요가 있는가? 답은 늘 그렇듯 명확하다.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즐겁기 때문이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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