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올해 추가 2번 ‘점진적 인상’ 예고…일본, 유럽 등 돈줄 죄기 시작
1,300조원 넘는 가계빚에 한국도 내수침체, 외화유출, 수출악화 우려
미국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올해 금리를 추가로 2번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매년 세 차례씩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밝혀 2019년 말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3%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본격적인 긴축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그간 글로벌 자금이 몰렸던 한국 등 신흥국 경제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통화정책 결정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공개한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올해는 평균 0.25%포인트씩 상승해 이날을 포함한 세 차례 인상을 통해 1.25~1.50%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2019년 전망치는 2.9%에서 3.0%로 소폭 상향 조정됐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 결정 이후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예상대로 계속 좋아지면 연준의 기준금리를 장기 중립 목표인 3%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점진적으로 올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번까지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것으로 우려했던 시장은 급격한 금리 인상 우려가 해소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0.54% 상승해 장을 마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0.84%, 0.74% 올라 장을 마감했다. 유럽 증시는 연준의 정책금리결정회의 종료 이전에 마감돼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금리 인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영국(0.15%), 독일(0.18%), 프랑스(0.23%) 증시 모두 상승 마감했다.
하지만 미국의 기준금리가 1%대를 회복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는 글로벌 초저금리 시대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이 시작한 ‘돈줄 죄기’가 유럽 등 다른 주요국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과거 미국의 통화긴축 시기에는 신흥국에서 자금이 유출되며 금융불안이 이어졌던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화 긴축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 달러 부채를 대거 낸 신흥국 기업들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은행이 국제금융협회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터키, 멕시코, 남아공, 사우디아라비아 등 25개 신흥국의 자금흐름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5년간 모두 6조2,000억달러(약 7,000조원)가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기 자금 유입 규모는 금융위기 이전 2002∼2006년 유입된 자금 2조5,000억달러(2,850조원)의 2.5배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일제히 푼 돈이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 간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을 필두로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등도 돈줄 죄기에 나설 조짐을 보이면서 신흥국에서의 자금유출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최근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경제 내수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최근 한국경제는 수출 회복세가 생산·투자로 확대되면서 미약하게나마 개선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면서 전체 경기 회복세에 제약이 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당장 국내 금리 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이미 시작된 시중 금리 상승세를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1,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등의 문제로 기준금리 연 1.25%를 8개월째 동결 중이다. 그럼에도 이미 FOMC 전 금리 인상 기대로 올해 1월 은행 가계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39%로 전월보다 0.10%포인트 올랐다. 은행 가계대출 금리는 지난해 8월부터 5개월째 올라 2015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된다. 가뜩이나 닫혀 있는 지갑은 더 열릴 수가 없게 돼 전체 내수 경기에는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지난달 내수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은 우리 금융시장에서의 급격한 외화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직은 미국의 금리가 한국보다 낮지만, 미국이 올해 2차례 더 인상하면 연말에는 금리가 역전된다. 이렇게 되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투자 자금이 금리가 더 높은 미국으로 급속도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 1년 국채금리가 25bp(1bp=0.01%포인트) 오르면 한국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3개월 후 3조원 유출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외화유출을 막으려고 금리를 인상하면 가계부채 뇌관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게 되고, 그렇다고 금리를 동결하면 돈이 빠져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그나마 좋은 흐름인 수출 호조세가 지속될지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가 심화돼 원ㆍ달러 환율이 오르면 한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점은 수출에 도움을 주는 요인이다. 금리 인상 자체가 미국 경제의 호조세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대미 교역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신흥국 경기가 침체될 수 있는 점은 수출 회복 지연 요인이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 등 신흥국 의존도는 57.5%에 달한다. 신흥국 경기가 타격을 받으면 한국 수출의 감소로 직결된다.
향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금리 인상은 그 동안 꾸준히 예측돼 왔기 때문에 충격이 크지 않지만, 앞으로 인상 횟수와 속도에 따라 한국경제에 대한 위협 요소가 실제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가질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당장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추가 금리 인상 전에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며 "부채 증가율이 조금이라도 하락하는 등의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정책 집행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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