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라 발표되는 출산율 통계
현상 보여주는 연구자료로 가치
성평등 사회선 스펙ㆍ출산율 비례
국내서 희귀한 연구 아니길 기대
장시간 일하고, 소득이 높은 여성일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14일 ‘또’ 나왔습니다. 최근 저출산 원인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은연 중에 ‘고스펙’ 여성에게 화살을 돌리는 불편한 내용을 담은 것들이 적지 않은데, 이 연구 결과 역시 앞선 연구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 볼까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2009~2014년 20~45세 여성 380명의 사례를 분석했는데요. 우선 임시 일용직과 자영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상용직(정규직) 여성에 비해 첫째 아이를 낳을 확률이 각각 12.1%, 15.1%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 소득이 450만원 이상인 집단은 첫째 아이를 낳을 확률이 300만~450만원 미만인 집단에 비해 11.7%가 더 적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또 주당 근로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에 가까운 35~40시간인 여성을 기준으로, 40~60시간 미만 일하는 여성은 기준 집단보다 첫째 아이 출산 확률이 5.3% 낮았고, 60시간을 넘어서는 여성은 무려 16.2%나 적었습니다.
요컨대, 통계는 ‘장시간 일하는 고소득ㆍ정규직 여성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요. 이런 연구결과는 이제 익숙합니다. 1974년부터 2012년까지 출산력을 추적 조사한 결과, 여성 학력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더라는 연구보고서가 지난 달 있었고요. 이어 고학력ㆍ고소득인 여성일수록 결혼을 안 한다는 연구자료도 있었습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현상을 보여주는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연구에서 이끌어내는 결론입니다. 지난 달 보사연에서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던 선임연구위원은 “고학력ㆍ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혼인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사회적 규범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백색 음모(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철저하게 기획ㆍ추진돼야 한다”고 밝혀 경악케 했습니다. 그는 이후 보직 사퇴했습니다.
다행히 이날 보고서는 결론이 사뭇 다릅니다. 보고서를 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육아휴직 제도 강화 등)일ㆍ가정 양립제도를 통해 부모로 하여금 직장에서 오는 역할과 가정에서 오는 역할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저출산 연구가 ‘고소득 고학력 맞벌이 여성이 출산을 안 하니, 여성의 학력을 낮추고 일을 못하게 하자’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연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저출산 문제가 없었으니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같고, 그저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는 효과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달 초 21개국을 분석해, 성(性) 평등이 이뤄진 사회에서는 고학력·고소득 여성일수록 아이를 더 많이 낳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던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보고서가 국내에서 희귀한 연구가 아니길 기대해 봅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