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사건 시작과 끝은 정경유착
기업과 정치권이 반기업정서 유발해
구태 벗고 투명 경영이 올바른 선택
너무 엉겨 붙은 것이 문제였다. 대통령 탄핵심판의 전말 얘기다. 시작과 끝이 정경유착(政經癒着)이었다. 대통령이 자신과 측근의 사적 이익추구를 위해 공적 조직을 동원해 민간기업 등을 움직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다가 대통령은 파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이라는 파경을 맞이했다. 간통죄가 있던 시절 불륜 사건의 결말을 보는 듯하다. 물론 들키지 않았으면 ‘로맨스’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그렇다. 특히 안창호 헌법재판관의 보충의견에는 정경유착의 폐해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정치권력과 재벌기업의 유착은 그 기업에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지만 다른 경제 주체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요지다. 정경유착 행위는 기업생태계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겠다.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대기업이나 재벌에 대해 세금을 올리고 각종 재갈을 물리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반기업정서 때문에 기업 못 해 먹겠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린다. “정권이 돈을 달라는데 어떻게 안 줄 수 있겠나. 우리는 피해자다”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기업은 큰 잘못이 없다는 걸까. 정치권은 어떤가. 자본주의 역사가 짧지만, 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는 꽤 뿌리가 깊다. 해방 이후 일본 식민지 귀속재산(적산ㆍ敵産) 처리, 국영기업체 불하 과정에서 소수의 기업가가 정경유착을 통해 특혜를 본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적산 기업 등을 불하받았던 사람들이 지금의 두산 한화 SK 삼성 등의 창업주들로 그 특혜가 70여년간 이어지는 셈이다. 또 한국전쟁 폐허 복구 과정에서 부족한 생필품 수입에서도 일부 기업이 수입 허가권을 이용해 융자나 이자특혜 등을 받아 성장했다.
1964년의 삼분(三粉)폭리 사건은 전형적인 정경유착 비리이다. 설탕 밀가루 시멘트 등 삼분 생산 기업들이 폭리를 취하고 세금포탈을 했으나, 공화당 정권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고 무마했다. 이후에도 군부와 민간 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경유착 사례는 무수히 적발됐다.
정권만 바뀌면 통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전 정권의 비리 척결에 나섰다. 재벌을 처벌하고, 다시 ‘경제 살리기’ 명분으로 재벌을 사면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반기업정서는 깊어졌다. 또 군사정권 시절의 정경유착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화합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게 지금의 성장과 배분 문제에 대한 이념적 갈등을 초래한 측면이 없지 않다.
김수한 고려대 교수는 저서 ‘한국사회의 반기업문화’에서 “반기업 담론은 특정 사건이나 기업의 일탈로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축적된 역사적 구성물”이라며 “특히 국가와 지배적 정치세력은 기업에 부정적인 인식과 반감을 심어 주는 핵심적 역할을 했고, 모든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및 기업가와 의도적인 갈등과 타협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사회공헌 등으로 아무리 포장을 해도,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정경유착이었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 다녔다. 탐려득주(探驪得珠)라는 말이 있다. ‘검은 용을 찾아 진주를 손에 넣다’라는 것으로 ‘큰 위험을 무릅쓰고 큰 이익을 얻는다’는 뜻이다. ‘화약장사’라는 말처럼 위험한 장사가 이문이 많이 남는다는 얘기겠다.
재벌의 잘잘못은 수사기관에 맡기면 될 일이다. 단지 우리 사회가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 있는 만큼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업은 정경유착의 구태를 버리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라는 얘기다. 재단기부금 출연 등의 사회공헌으로 포장한다고 반기업정서가 사그라질 것도 아니다. “주변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조선시대 경주 최 부자가 남긴 따뜻한 유훈을 되새길 일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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