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어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19대 대선일을 5월 9일로 확정하고 자신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황 대행이 주초 정례 국무회의에서 선거일 지정안건을 올리지 않아 이런저런 뒷말과 추측을 낳았던 만큼 이날 결정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대선 정국의 커다란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황 대행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저의 대선 참여를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고심 끝에 현재의 국가위기 대처와 안정적 국정관리를 미루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보수진영의 기대를 외면할 수 없어 거취를고민했지만,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직면한 국내외 안보 및 경제 복합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책임을 더욱 막중하게 느꼈다는 뜻일 게다. 여러 가지 정치적 계산과 주변의 유혹이 적잖았겠지만 "사람이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라는 그의 믿음에 따르더라도 옳은 판단이다.
우리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이 부추겨 온 황 대행의 대선출마가 정치도의적으로, 또 책임윤리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누차 지적해 왔다. 우선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법무부장관과 총리 등 핵심요직을 누린 탓에 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병역문제 등 개인적 결함은 그 다음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날 대선공고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 대선정국에서 그에게 맡겨진 심판 역할이다. 그가 자신의 자리를 잘못 찾으면 '대행의 대행'이라는 코미디를 피할 수 없고, 대선관리의 엄정성과 공정성 역시 길을 잃을 우려가 크다. 그의 출마를 위한 배려로 후보등록 특례규정까지 만든 자유한국당마저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탄핵정국에서 대안을 모색해 온 보수진영으로선 황 대행의 불출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하차 이상으로 아쉬울 것이다. 그가 거의 유일무이한 문재인 대항마로 꼽혀 온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보수 괴멸의 의미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권력을 놓는 것이 두려워 임기응변으로 후보를 차출하는 대신 긴 안목에서 참된 보수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재목을 키우는 게 답이다. 황 대행도 그 대열에 설 수 있다. 어려운 시기에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낼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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