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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쌈짓돈-경영권 세습, 검은 거래 고리부터 끊어야

입력
2017.03.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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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모아 간담회를 연다.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수출과 일자리 확대를 위해 기업인들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면 그룹 총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투자ㆍ고용 계획을 발표한다. “향후 O년간 OO조원을 투자하겠다”, “신규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O% 늘리고, 이를 위해 OOOO억원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하는 식이다. 대신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가 기업 활동에 부담을 준다며 각종 애로사항을 해결해 줄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는 기업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제도 개선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화답한다.

연례 행사로 열렸던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개별 기업의 경영 계획을 청와대에서 공개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반복됐다. 대통령이 초대한 자리에 빈손으로 갈 수 없는 기업들은 이미 예정됐던 투자ㆍ고용 계획까지 재포장하고 적당히 ‘뻥튀기’ 해서 발표했다. 경제 관련 정부 부처는 ‘우리가 기업들을 이렇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걸 청와대에 보여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들을 들볶았다. 한 재계 인사는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서나 가능한 일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벌어지고 있다”고 비꼴 정도다.

역대 정권의 행태가 비슷했지만 재계에선 유독 박근혜 정부 들어서 간섭이 심해졌다고 평가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청년희망펀드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발시킨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모금까지, 대기업들은 정부 정책의 자금 조달 창구였다. 전직 경제단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기업 경영 활동도 청와대가 간섭하고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기본 인식을 가진 것 같다”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관치 경제를 보고 배운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 차관을 대기업에 나눠주고, 대신 정치자금을 받던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대통령의 생각은 ‘정경유착’의 폐단으로 이어졌다. 경제활성화와 창조경제를 이야기했던 2015년 7월 공식 간담회 직후 박 대통령이 주요 기업 총수들을 따로 만나 미르ㆍK스포츠재단 지원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경유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업의 돈을 정권의 쌈짓돈으로 여기는 정치권의 고질적인 관행과 경영권 세습을 위해 정치권력을 이용하려는 총수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차기 정부에선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정부 정책에 기업의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기업의 돈이 눈먼 돈으로 여겨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경유착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뿐만 아니라 재벌체계도 원인”이라며 “재벌이 경영권 세습과 사익 편취를 위해 정부를 이용하려 하는데 그걸 원천적으로 끊지 않으면 정경유착이 사라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정경유착을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금산분리규제, 기업결합규제, 순환출자규제 등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많아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기업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주요 상장기업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달라는 걸 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규제를 풀어 정부와 기업의 수직적 갑을관계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경유착을 끊기 위해선 정치개혁이 근본적 과제이지만 당장 대책을 마련하긴 어렵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기업과 정부 간에 꼭 필요한 커뮤니케이션까지 사라지지 않도록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한국형 로비스트법 제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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