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아이언(25)씨가 피해자의 신상과 성적 취향을 폭로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 14일 언론 보도를 통해 아이언이 여자친구 A(25)씨를 마구 때린 혐의(상해 등)로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알려졌다. 아이언은 2014년 케이블음악채널 Mnet의 힙합오디션프로그램 ‘쇼미더머니3’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2015년 가수 데뷔를 한 랩퍼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아이언의 폭행 정도는 심각했다. 검찰에 따르면 아이언은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자신의 집에서 A씨와 성관계를 하던 중 A씨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주먹으로 얼굴을 한 차례 때렸다. 당시 그는 A씨의 신고가 두려워 흉기로 자신의 허벅지를 긋는 등 자해하며 A씨에게 “신고하면 ‘네가 그랬다’고 말하겠다”며 협박했다. 보름 후 아이언은 A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A씨의 목을 조른 채 주먹으로 4,5회 얼굴을 때리고 왼쪽 새끼 손가락을 다치게 하면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아이언, 기소사실 알려지자 “마조히스트라서…” 피해자 사생활 폭로
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마무리 될 법한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튄 것은 14일 오후 아이언이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 A씨의 신상과 성적취향이 공개하면서부터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A씨를)처음 만난 것은 앨범 자켓 촬영 때문이었다. 그 여성은 제 앨범의 모델이었다”라며 A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어 그는 “그 친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학적인 성적 관념을 가진 마조히스트라는 점”이라며 “늘 저에게 폭력을 요구했다. 본인은 그래야만 만족을 한다고 했다. 상해에 대한 것은 결코 폭행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공개된 아이언의 인터뷰가 폭행 피해자인 A씨에겐 또 다른 피해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앨범의 모델이었다’란 아이언의 발언으로 A씨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에 따라 A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회관계형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계정이 드러났고, 이곳에 게재된 A씨의 성적 취향이 반영된 사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퍼져나가면서 A씨는 관음증적 시선의 피해자로 둔갑했다.
여기에 국내에선 아직까지 대중적이지 못한 사도마조히즘(SM), 즉 가학피학성애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아이언이 A씨에게 휘두른 폭력이 정당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마저 퍼지는 양상이다.
실제 아이언이 A씨가 마조히스트임을 밝힌 이후의 언론보도를 보면 ‘아이언 불구속 기소, ‘마조히스트’ 여자친구 SNS 사진 보니 ‘충격’’ 등의 제목으로 A씨의 SNS를 가십성으로 다루거나 ‘아이언 “마조히스트” vs 여친 “폭행”…누구 말이 맞을까’ 등을 포함해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먼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SM 플레이는 ‘프로레슬링’과 같아…1부터 10까지 합의하는 것”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SM 취향이 폭력 정당화의 배경이나 도구로 활용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SM 플레이’에 대해 흔히 ‘때리거나 맞음으로써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이란 기본적 수준의 인식으로 인해 이런 행위가 처음부터 끝까지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게 간과된다는 지적에서다.
여성을 위한 도색잡지를 표방하는 독립출판물 ‘젖은 잡지’의 정두리 편집장은 1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들의 플레이는 짜고 치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이기 때문에 1부터 10까지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이유는 그녀가 마조히스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그것은 하등 관계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여성이 만약 (성적 대상으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으면서 성욕을 느끼는 방식의) 마조히즘 성향을 드러낼 경우, 이번 사례처럼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적 취향을 이용하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이나 강간에 훨씬 더 노출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자가 마조히스트인 경우엔 더더욱 사람들이 ‘이 여자는 때려도 되는 여자, 강간해도 되는 여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두려워하는 여성은 음지로 숨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성적 취향을 폭로한 아이언의 대응은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맞불 전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손문숙 활동가는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은 보통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에 초점을 맞춘다”며 “이들은 보통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피해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서, 그럴 의도가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손 활동가는 “아이언처럼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행한 폭행의 심각성 때문에 더 큰 이슈로 이를 덮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마조히스트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라며 “너무나 당연하게 폭력사건으로 재판에 넘어가면서 끝나야 할 사건이 가십성으로 흘러가며 피해 여성에게 화살을 돌리는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A씨 측은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욕설과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등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A씨의 지인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1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이언의 허위 인터뷰 때문에 피해자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됐고, 이 때문에 A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ㆍ온라인 괴롭힘)까지 당하고 있다”며 “사건의 논점은 이별통보로 인해 폭행을 당했고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지 성관계나 성적 취향 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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