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사업, 창조경제 등
일단 지르기식 목표 설정
청와대가 ‘경제 걸림돌’로
부채 의존 내수 활성화도 한계
대기업 중심 낙수효과도 폐기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세우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2014년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구상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때 내세운 비전이 ‘474’였다. 4% 잠재성장률, 70% 고용률, 4만달러의 1인당 소득을 달성한다는 게 골자였다. 3년이 지난 지금 3개년 계획 중 실현된 것은 하나도 없다. 행복시대도 열리지 않았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해 예전 같은 고성장을 구가하기 힘들고 시장의 주도권이 이미 민간에 넘어갔는데도 경제성장 초기 단계나 통했던 국가단위발전계획에 기댄 참혹한 결과다.
한계에 달한 구호경제
청와대가 무리한 목표를 잡으며 경제의 사령탑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모순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반복됐다. 경제 기초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목표 설정이 문제였다. “나를 따르라”는 대통령의 구호에 부처는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했고, 그러다 무리수가 따르고 부작용이 양산됐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도 그런 예다.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외치니 문화 연관 사업에 예산이 아낌 없이 투입됐고, 결국 이 틈을 노린 비선실세가 국가 예산을 농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실체가 불분명한 창조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전국 18곳에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 재원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정권이 바뀌면 지원이 계속될지 미지수다. 창조경제는 창의성을 존중하는 개념인데도 실제론 기업을 강제 동원하는 등 창의력에 반하는 악수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든 상황에서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실패 가능성만 더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차기정권이 확실한 국정개혁 노선을 정한 뒤 최소 3년간은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며 국민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벼랑 끝 다가간 부채경제
가계 소득을 근본적으로 확충하지 못하고 진통제(부채)에만 의존해 내수와 부동산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박근혜 정권은 집권 중반기인 2014년부터 부동산 규제를 풀며 본격적인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가계 부채는 1,344조원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금리 상승기를 맞아 소비 여력을 갉아먹을 것으로 보인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이유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채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됐기 때문에 피해가 적었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수출 부진을 메우려 부동산 경기와 가계부채 증가를 통한 손 쉬운 부양책에 매달렸고 이는 가계 재무구조 부실을 낳았다”며 “차기 정권이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폭탄을 떠넘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바닥을 드러낸 낙수경제
고소득층과 대기업 소득이 늘면 소비ㆍ고용 효과가 확산돼 결국 전체 경제가 성장한다는 ‘낙수효과’도 재고돼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낙수효과는 이미 폐기된 이론이다. 미국 등 기득권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은 1980~2012년 전 세계 159개국 소득과 성장의 연관성 분석에서 낙수효과로 인한 성장의 단서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상위 20%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포인트 높아지면 5년간 성장률이 0.08% 후퇴했다. 거꾸로 하위 20% 소득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5년간 0.38%의 성장 효과가 확인됐다. 낙수효과 반대 개념인 분수효과(저소득층 소비 증가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의 유용성을 검토할 때라는 얘기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 대다수인 서민들의 실질소득이 늘고 국내 경제가 안정돼야 소비가 늘고 기업 투자도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우대정책을 주문하는 의견도 많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동력을 잃은 이유는 모든 자원과 정책이 대기업에 집중됐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경제정책은 기획재정부 중심의 매크로(거시)에서 벗어나 산업부 중심의 마이크로(미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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