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이 달라졌다.”
‘선한 의지’ 발언 파문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권토중래에 나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사실상 분열의 리더십으로 몰아붙이면서다.
안 지사는 14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지상파 5개 방송사 주최 민주당 대선주자합동토론회에서 작심한 듯 문 전 대표의 리더십을 정조준 했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가 정치 입문 이후 당 대표를 지내는 동안 민주당을 떠났던 김종인 전 대표를 비롯한 손학규 김한길 박지원 안철수 등 정치인들의 이름을 쭉 차례로 나열한 뒤, 문 전 대표가 뺄셈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내 분열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통합으로 이끌 수 있겠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안 지사의 발언을 두고 안 지사 캠프를 비롯한 정치권 안팎에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안 지사가 그간 문 전 대표에 대해 날 선 공격을 자제해왔지만 문 전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는 게 캠프 관계자들의 얘기다. 실제 안 지사는 최근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 전 대표가 정치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통의 정치적 자산으로 둔 두 사람이 반목하고 대립하는 것으로 비치는 데 대한 부담으로 공세 수위는 높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날카로운 긴장이 조성됐었다.
안 지사가 공세 수위를 높이며 달라진 데는 지난 주말 박영선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의원멘토단의 조언이 계기가 됐다. 탄핵 결정 이후 3일간 캠페인을 중단했던 안 지사는 향후 경선 기조 및 메시지를 두고 끝장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소신’은 지켜나가되 ‘변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주를 이뤘다.
핵심 화두는 안 지사의 트레이드마크인 대연정이었다. 의원들은 “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자유한국당과도 대연정을 할 수 있다”는 안 지사의 기존 메시지를 미세조정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개혁 과제라는 전제조건은 묻히고 단순히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느냐 마느냐는 식의 연대 여부만 따지는 논쟁으로 흐르면서 안 지사의 ‘선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 지사는 그러나 대연정이란 원칙의 메시지가 톤다운 되거나 소신이 후퇴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주저했다고 한다. 이에 의원들이 전방위로 강하게 설득에 나섰다. 먼저 이철희, 기동민 의원 등이 애정을 듬뿍 담은 ‘협박(?)’에 나서고, 최종 담판은 박영선 의원이 나서는 식이었다. 결국 ‘안희정 대 의원멘토단’ 간 2시간 가량의 격론이 오간 뒤 “대개혁을 위한 대연정”이란 메시지가 탄생했다. 멘토단의 첫 작품이었다.
안 지사 측 관계자는 “그간 캠프에서 ‘안희정 바이블’이 회자될 만큼 안 지사의 소신을 꺾지 못했는데, 안 지사로서도 레이스가 단축된 만큼 이제는 자신의 소신을 빠르고 쉽게 전달시킬 수 있는 현실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의원멘토단은 안희정의 소신론과 현실론을 절충한 사례기도 하다. “캠프 집권은 없다”며 세 불리기, 줄 세우기에 일찌감치 선을 그었던 안 지사는 캠프에 러브콜을 보내오는 의원들의 합류를 본인의 소신에 배치된다며 꺼려해 왔다. 지지선언 이상으로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원들의 현실적 요구를 두고 3주간의 밀당이 벌어진 배경이다. 심지어 이철희, 기동민, 어기구 의원의 캠프 합류 기자회견 전날 밤까지도 안 지사가 해당 의원들에게 전화해 “꼭 해야 되느냐”며 고민을 토로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안 지사가 소신을 버린 것은 아니다. 안 지사는 주말 멘토단 회의에서 자신이 왜 대연정을 굽히지 않는 지에 대해 “더 강해지고 유능한 진보 세력과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간 보수 진영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중도 세력을 흡수했기 때문인데, 이번 기회에 진보진영과 민주당이 중도 세력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대연정 등 포용적 리더십의 노력 없이 지금 그대로 유지되면 결국에는 ‘5년 정권’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경고도 덧붙여졌다. 각종 쓴 소리를 내놨던 멘토단 의원들도 안 지사의 이 발언에는 모두가 수긍했다고 한다. ‘더 큰 소신’을 이루겠다는 안 지사가 ‘이유 있는 변신’을 어디까지, 얼마나 더 도모할지 지켜볼 일이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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