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는 각별하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가 북한과 형제국 이상의 돈독한 사이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태양의 꽃’으로 불리는 김일성화는 북한-인도네시아 관계의 상징이다. 1965년 비동맹회의 10주년 행사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 주석이 식물원에서 붉은 색 열대성 화초에 관심을 보이자 수카르노 대통령은 “김일성 동지에게 진귀한 꽃을 바치겠다”며 ‘김일성화’라고 명명했다. 이 꽃의 정식 학명도 ‘덴드로븀 김일성란’이다. 평양에서는 매년 김일성화 축전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 수카르노의 장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자신의 관계를 “남매지간”이라고 불렀다. 김정일이 사망하자 메가와티는 “김 위원장은 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며 “매우 큰 상실감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는 전ㆍ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메시지를 전하는 등 남북교류 진전에도 힘을 쏟았다. 대를 이은 북한과의 인연이다.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도 두 차례 망명생활을 할 때 김일성이 평양에 웅장한 별장을 지어 주며 환대하자 열 살 위인 김일성을 친형처럼 따랐다.
▦ 북한과 동남아 국가의 깊은 연대의 뿌리는 1950, 60년대 비동맹운동이다. 주권평등, 내정불간섭 등에 대한 이념적 동질성이 근간이다. 말레이시아 역시 수차례 북미대화의 가교역할을 하는 등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김정남 독살 사건으로 북한은 반 세기 넘게 이어져 온 동남아와의 유대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선대가 일궈 놓은 오랜 외교적 유산을 김정은이 알고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북한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선거전의 화두가 될 조짐이다. 집권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지도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 어떤 접근법을 써야 하느냐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균형감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몇 번을 하든, 화학무기를 쓰건 말건 북한을 감싸고도는 태도로는 어떤 건설적 비판이나 대안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천편일률로 쏟아 내는 대북 유화책, 이젠 달라질 때가 됐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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