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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돌아보며

입력
2017.03.1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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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올해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토론이 매우 활발히 진행됐을 것이다. 2017년 올해는 1987년 ‘6월 항쟁 30년’과 1997년 ‘외환위기 20년’이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5월 초 새 정부가 출범하면 여름과 가을 두 역사적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조명이 작지 않은 관심을 모을 것이다.

내가 6월 항쟁 30년과 외환위기 20년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 두 사건이야말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역사적 기원을 이룬다는 점에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사건사·사회사·구조사로 나누고, 특히 사회사를 ‘콩종크튀르(국면)의 역사’라 이름 지은 바 있다. 콩종크튀르가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라 하더라도 국면에 따라서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면의 역사에서 볼 때 6월 항쟁과 외환위기는 각기 다른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학계 일각에선 이를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라고 명명했다. 87년 체제가 ‘민주화 체제’라면, 9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체제’다. 지난 30년을 거시적으로 돌아보면 ‘민주화의 시간’과 ‘신자유주의의 시간’이 공존하며 중첩되고 갈등하면서 우리 사회 변동을 이끌어 왔다.

지난 10월 말부터 올 3월 초까지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두 국면적 시간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탄핵의 일차적 원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린,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개입과 이권 추구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는 데 있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국가의 기본을 부정한 것에 맞선 주체는 ‘촛불 시민’이었다. 촛불 시민들의 광장 민주주의가 87년 체제의 중요한 특징인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역사적 전통 속에 놓여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늦가을에서 초봄까지 광장에서 가장 크게 울려 퍼진 것은 대통령과 정권의 퇴진 요구였지만, 그 사회적 배경을 이룬 것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와 97년 체제의 그늘인 불평등 강화와 격차 확대에 대한 거부였다. 97년 체제에 초점을 맞추면, 양극화 강화 혹은 중산층 붕괴 그 무엇이라 표현하든, 지난 20년 간 분배 구조는 중간층이 두터운 ‘다이아몬드형 사회’에서 소수 상층과 다수 하층으로 이뤄진 ‘모래시계형 사회’로 변화해 왔다.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해야 할 정부에 있었다는 것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제 막 열린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올바로 숙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대선 과정은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이에 대한 분석과 과제를 심층적으로 토론할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2012년 대선에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지난 4년 간 박근혜 정권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약속을 저버렸지만, 그렇다고 새롭게 열린 대선 국면에서 토론을 하지 않을 순 없다.

이러한 토론의 출발점은 당연히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있다. 그리고 그 성찰의 핵심에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신자유주의의 극복이 놓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87년 체제의 미완의 과제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있다면, 97년 체제의 긴급한 과제는 불평등 완화 또는 격차 해소에 있다. 이 두 과제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시장과 시민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증진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자리 창출, 재벌개혁, 한국형 제4차 산업혁명, 노동개혁, 복지 강화, 권력기관 개혁, 강한 안보와 외교 등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가 적지 않다. 이 과제들이 수렴하는 매스터 프레임은 다름 아닌 불평등 해소와 민주주의 성숙이다. 빠른 일정으로 치러질 대선이지만 나무 못지않게 숲을 봐야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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