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억 전액 지급 약속하고선
출퇴근 기록 없다는 이유로
실제 근로보다 쥐꼬리 지급
‘차후 민형사상 이의 제기 말라”
회사에서 황당한 각서까지 요구
“돈 떼인 것도 억울한데…” 분통
이랜드파크가 운영하는 ‘애슐리’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주부 A씨는 얼마 전 이랜드의 임금 체불 소식을 듣고, 회사 홈페이지를 찾았다. 시간을 초과해 일했던 것에 대한 대가 등 본인이 생각해본 것만 해도 100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아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는데, 회사는 고작 5,900원을 제시했다. 출퇴근 기록에 근거해 정확히 산정된 금액이라는 얘기에 A씨는 기가 찼다. 1년 넘게 매일 30분 일찍 출근지문을 찍었는데, 이를 독려한 게 다름아닌 회사였다.
더 황당한 건 이 금액을 받기 위해 회사에서 요구한 약속 사항들이었다. ‘차후에 어떤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회사에 어떤 처벌 및 제재도 원하지 않는다고 동의할 것’ 등이었다. A씨는 “그간 온갖 꼼수로 돈을 떼인 것도 억울한데 이런 식의 각서까지 쓰게 하면서 이의 제기도 못하게 하냐”고 혀를 찼다.
아르바이트생들을 상대로 84억원 상당 임금을 체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탄을 받고 있는 이랜드파크가 체불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출퇴근 기록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실제 근로 대가보다 턱 없이 부족한 ‘푼돈’을 지급하고 있는가 하면, 이마저도 ‘앞으로 다시는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등 사실상의 각서까지 요구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두 번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파크 체불 임금 문제는 지난해 12월 불거졌다. 애슐리, 자연별곡 등 외식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의 각종 임금 및 수당을 미지급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면서 회사 대표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강도 높은 비난과 함께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랜드그룹 경영진이 나서 “전 계열사를 샅샅이 살펴서 그 어떤 잘못도 찾아내서 확실하게 고치겠다”면서 “체불 임금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당장 미지급 임금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애슐리에서 한 달 조금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다 최근 그만둔 대학생 B씨는 “회사에서 주겠다는 게 7만3,000원”이라며 “특히 9시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쉬는 시간 없이 밤 늦게까지 일했는데, 추가근무수당 자체가 ‘0원’이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에 항의도 했지만 “실제 일한 시간과 출퇴근지문기록이 100% 일치한다”는 답변만 한 채, 정작 출퇴근지문기록의 공개는 거부했다.
이랜드 측도 이 같은 문제를 시인했다. 13일 본보가 취재에 나서자 “기업 입장에서 돈이 나가는 부분이라 통상적인 확인서를 받았던 것”이라면서 “대상자들이 불편을 느낀다면 확인서에 동의하지 않아도 미지급금을 청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또 “미지급 대상 수만 여명의 내역을 수작업 검토해 금액을 산출하다 보니 대응에 미진했던 부분이 있다”며 “추후에는 개인 문의 시 상세 출퇴근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최강연 노무사는 “출퇴근지문기록만 공개하면 실제 노동시간 및 체불임금을 정확히 산출할 수 있는데 이랜드 측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법적 문제제기를 금지하는 각서 또한 효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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