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우리 민주주의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대통령 파면 결정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 중 3명이 숨진 것에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여에 걸친 시민저항의 여정이 ‘질서 있는 분노’를 통해 절제와 인내 속에 진행되면서 일단락 된 사례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장은 불안하다. ‘태극기 집회’ 주도세력이 헌재 결정 수용을 거부하는 데다, 촛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탓이다. 탄핵 결정에 반발하는 세력은 저항을 계속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휴일인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 주변에 몰려가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등의 과격한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앞서 헌재 선고 당일에는 죽봉과 각목 등을 경찰에 휘둘렀다. 국내외 취재진에게도 무차별로 폭력이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6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고, 시위 참가자 일부가 아까운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친박 단체들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운동본부’는 주말인 11일 집회에서 “국가 반란적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헌재 해산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다수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주장으로, 민주주의와 법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던 촛불집회는 11일로 승리를 자축하며 일단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사드 배치 철회, 재벌기업 총수에 대한 수사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광장에서 촛불이 다시 타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승복이다. 견해 차이를 인정하되 결과에는 승복해야 공동체가 유지되고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엘 고어 당시 민주당 후보는 승복 연설에서 “지금은 서로의 차이를 얘기하며 분열하기보다는 화합이 더 절실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라고 호소해 미국의 분열을 막았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를 갖추고, 보듬어야 한다. 자신들만 옳다는 독선에 사로잡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통합을 저해하는 편가르기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한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광장의 에너지를 제도 정치로 수렴해 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젠 광장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