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대통령 개헌 찬동 집회
재외국민 ‘표몰이’ 장관 입국 거부
터키 “나치 같은 행태” 원색 비난
대사관 출입금지 등 외교 보복도
집회 참가자들 장관 못 오자 격분
로테르담 영사관 앞 경찰과 충돌
터키 정부가 막바지 개헌 표몰이를 위해 서유럽 국가에서까지 개헌 찬동집회를 무리하게 열면서 이들 정부와 외교갈등을 키우고 있다. 네덜란드는 터키 영사관을 봉쇄하고 터키 정부 고위급 인사의 입국을 막는 등 초강경 외교 조치로 대응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제2도시 로테르담 공항에 도착 예정인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이 탑승한 비행기에 대해 공공질서와 안전 우려를 이유로 착륙 불허 결정을 내렸다. 차우쇼을루 장관은 이날 로테르담 시내에서 열리는 터키 정부 주도의 개헌 지지집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터키 장관이 네덜란드에서 공적인 정치 캠페인을 벌이는 상황에 절대 협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당국은 이어 터키계 주민들의 항의 집회를 우려해 터키 영사관이 위치한 로테르담 거리도 봉쇄했다. 정부의 긴급조치에도 이날 오후 1,000여명 규모의 터키 교민 시위대는 영사관 인근에 운집해 규탄 집회를 벌인 끝에, 경찰견 및 물대포로 강경 진압하는 경찰 측과 충돌을 빚었다. 시위대의 분노는 같은 날 차 편으로 로테르담에 진입한 파트마 베툴 사얀 카야 터키 가족사회정책부 장관이 연달아 추방되자 격화하고 있다. 카야 장관은 경찰 측이 영사관 진입을 막은 후 독일 국경으로 이동하도록 안내했다며 “이는 파시스트적 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한 개헌집회는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행정부가 개헌 국민투표를 한달여 앞두고 적극 추진 중인 일종의 관제집회다. 터키는 내달 16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임기 연장 및 대통령 권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시행한다. 터키 내 찬반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재외국민투표가 개헌 운명을 결정 지을 것으로 예상되자 에르도안 정권이 해외로 각부 장관을 파견해 지지 집회를 열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터키 정부와 개헌집회 갈등을 빚는 국가가 네덜란드 한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인 독일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스위스도 개헌집회를 불허해 터키 정부의 반발에 직면했다. 특히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서 “터키의 정치 갈등이 독일 땅으로 옮겨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에 “나치 같은 행태”라고 비난한 데 이어 네덜란드에는 “관계를 해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 등 공방 수위를 높이고 있다.
터키 정부는 유사 보복조치로 네덜란드에 맞대응하고 있다. 터키 외무부는 11일 네덜란드 대사 직무대행을 불러 차우쇼을루 외무장관 입국금지 조치에 공식 항의하는 동시에, 앙카라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과 이스탄불 주재 영사관의 출입을 안보상의 이유로 금지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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