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후 차벽 넘으려 과격 행동
스피커 추락해 70대 남성 숨져
60대 몸싸움 중 호흡 곤란 사망
기자 카메라 빼앗고 폭행까지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헌법재판소 인근 탄핵 반대 집회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헌재로 진출하려는 집회 참가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간 충돌이 빚어졌고, 이 과정에서 60, 70대 남성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도 속출하는 등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8일부터 안국역사거리 남쪽 방면 도로에서 3박4일 릴레이집회를 진행 중이던 시위대는 헌재 선고가 내려진 11시20분쯤부터 과격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고 직후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측 일부가 “폭력을 자제해야 한다”고 진정시켰으나 상당수 참가자는 경찰 차벽 쪽으로 접근하면서 헌재 결정을 비난하는 고성을 지르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참가자는 차벽을 넘어가기 위해 차 위로 뛰어오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다.
참가자들의 분노가 거세지면서, 집회 무대 마이크에서는 “가만히 있지 말고 돌격하라”는 선동 발언도 이어졌다. “다 때려 죽여야 한다”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폭언을 퍼부으며 금속으로 된 태극기 봉을 경찰버스에 휘두르고, 차벽 사이를 메운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과격행동이 점차 늘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 3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오후 1시쯤 집회 참가자인 60대 남성 정모씨가 전북경찰청 소속 차량을 탈취해 운전을 하다 차벽을 추돌하면서 지붕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가 추락, 밑에 있던 집회 참가자 김모(72)씨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경찰은 오후 6시30분쯤 도봉구 쌍문동 주거지에 있던 정씨를 특수공용물건손괴 등 혐의로 긴급체포해 차량 탈취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안국역 지하철 출입구를 통해 헌재로 진출하려던 집회 참가자들 중에도 사상자가 속출했다. 낮 12시15분쯤 주최 측 안내에 따라 안국역 지하 1층 2번 출구 계단 앞에 집결한 시위대가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맨 앞줄에 있던 고령의 시위 참가자 10여명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지면서 경찰관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의식을 잃은 김모(60)씨는 강북삼성병원으로 후송돼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끝내 사망했다.
경찰이 오후 3시쯤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시위대는 더욱 반발하며 과격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이날 아침 서울 지역에 최고 경비등급인 ‘갑(甲)호 비상령(전 경력 동원 가능)‘을 발동하고 헌재 주변에만 경력 57개 중대(4,600여명)를 배치했지만 폭력사태를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폭력사태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천도교 수운회관 뒤편에 있던 시위대 10여명은 탄핵 찬성 측 집회 참가자로 추정되는 젊은 남성을 둘러싸고 “빨갱이는 죽어도 된다”면서 폭언을 퍼붓고 집단폭행을 가했다. 인근 현장에 있던 기자 10여명 역시 “(탄핵인용은) 모두 언론 탓”이라는 시위대의 표적이 돼 카메라를 뺏기거나 멱살이 잡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폭력행사 등 불법행위를 한 참가자 7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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