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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촛불’과 ‘태극기’의 상대성이론

입력
2017.03.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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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움직이는 사람도 정지해 있는 나와 똑같이 이 세상을 바라볼까 하는 질문에 관한 이론이다. 그 기원은 적어도 갈릴레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갈릴레오의 주장이 당시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거부된 것은 아니었다. 만약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고 있다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은 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갈릴레오의 논리는 이렇다. 움직이는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돌멩이를 떨어뜨리더라도 돌멩이는 배의 뒤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돛대 바로 아래에 떨어진다. 돌멩이가 배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정지한 배에서 돌멩이를 떨어뜨렸을 때와 똑같다.

갈릴레오의 상대성이론에서는 물리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사람에게나 움직이는 사람에게나 똑같다는 가정이 암묵적으로 들어가 있다. 20세기의 아인슈타인에게는 ‘똑같음’의 기준이 물리법칙과 광속이었다. 이 둘은 고스란히 새로운 이론의 두 가정으로 정립되었고, 그 결과 특수상대성이론이 탄생하였다. 기준이 바뀌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이전까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시간과 공간은 새로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달라져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물리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광속도 변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에게 편리한 개념일 뿐, 이 우주의 근본적인 성질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시간이나 공간보다 더 자연의 근본 원리와 맞닿은 물리량이 있다면 그것을 부여잡고 자연을 기술하는 게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물리량을 하나 찾았다. 바로 광속이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운동 상태에 따른 상대적인 현상보다 그 현상을 지배하는 불변의 원리와 자연의 근본상수에 관한 이론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간혹 사람들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말에 현혹돼 상대성이론을 인식론적 상대주의로 혼동하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가치판단이나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말은 비슷해도 의미는 정반대이다. 상대성이론은 입장이 달라지더라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에 관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지나치게 신봉하면 진리와 가치의 경중을 따지는 일을 포기할 수도 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가 다 옳다고 우긴다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공통적인 가치도 합의할 수 없을 것이다. 입장과 처지가 제 각각이고 사회적 지위와 부가 서로 다르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규범을 제도화한 것이 법이라 했을 때, 법치주의 구현은 아인슈타인이 운동 상태에 따라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중심에 놓고 특수상대성이론을 구현한 것과도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기까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광장은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되었다. 탄핵이 인용된 이후 어쩌면 그 분열이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이를 미리 우려한 탓인지 헌법재판소가 선고하기 오래 전부터 결과 승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양쪽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상대주의에 머물고 만다. 이런 기계적인 중립이 과연 ‘공정한’ 처사일까?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를 맞이한 우리가 여기서 무언가 역사적 교훈을 남기려면 상대주의적이고 기계적인 중립을 넘어선 보편적인 가치판단을 내려야 한다. 태극기든 촛불이든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아니 합의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조기 대선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누구를 새로 뽑느냐는 문제를 넘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상대주의를 넘어, 이 시대가 던지는 역사의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답을 구할 것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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