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혼란 길어져 안돼, 신속히”
“대선에 영향 줘선 안돼, 미뤄야”
검찰ㆍ특검 적용한 혐의 총 14개
서울중앙지검 2기 특수본 가동
대통령으로서 불소추 특권을 내세워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 응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제 검찰 소환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혐의의 중대성으로 볼 때 구속 수사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향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시기와 강도는 대선 국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일단 검찰은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사건기록을 넘겨 받은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신속하게 강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강경론과 대선을 감안해 수사가 선거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특검은 90일간의 수사를 통해 ▦삼성 측으로부터의 433억원 뇌물수수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작성 지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 사직 강요 ▦블랙리스트 적용에 미온적인 문체부 고위 공무원 3명 ‘찍어내기’ ▦이상화 KEB하나은행 글로벌영업2본부장의 초고속 승진 개입 등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5개를 추가했다.
앞서 검찰이 ▦현대차에 최순실(61)씨 지인회사 납품계약 강요 ▦최씨 소유의 플레이그라운드에 71억원 광고발주 압력 ▦CJ 이미경 부회장 퇴진 강요 등 9개 혐의를 적용한 것에 더하면,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총 14개로 늘어났다.
애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수사를 시작했다가 특검에 넘긴 뒤 다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두 번째 수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2기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전반적인 수사는 형사8부(부장 한웅재)에서 맡게 되며, 삼성 관련 혐의 수사는 특수1부(부장 이원석)가 투입된다. 또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이근수)가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건을 전담하기로 했다.
초미의 관심사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돌입하는 시점이다. 신중론을 펴는 입장에서는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넘어간 마당에 검찰 수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시각이 있다. 1997년 대선 직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의혹 고발사건 수사와 관련해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룬 전례가 있다. 민간인이 됐다고 해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그를 여전히 지지하는 자유한국당과 지지세력, 나아가 이들이 내세우는 대선 후보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로 수사를 미루면 박 전 대통령은 5월에나 조사를 받게 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97년 수사 보류는 의혹만 제기됐을 뿐 구체적 내용이 없었고, 수사대상이 유력 대선 후보였지만 이번 수사 대상은 전직 대통령인 데다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라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논리이다. 박 전 대통령과 공범으로 지목된 최순실씨,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8)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이 모두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점도 신속수사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본인에 대한 대면조사만 남았을 정도로 수사 진척이 거의 마무리 단계이다.
더구나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고 빨리 정리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는 방안이라는 지적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사를 미루면 대선 이후까지 계속 국정 혼란이 이어질 수 있으니 조속한 수사로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국가 안정을 위해 낫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달 중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계획대로 맡은 수사를 하겠다”면서도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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