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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완벽하다...'싱글다이너'

입력
2017.03.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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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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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 나타난 신인류, 싱글 다이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밍글스’는 지난해 2월 서울 논현동으로 이전하면서 ‘바’ 공간을 만들었다. ‘혼밥’ ‘혼술’을 택하는 이들이 늘며 레스토랑에도 ‘싱글 다이너(Single dinerㆍ혼자 다이닝을 즐기는 이)’들이 등장해서다. 오너셰프 강민구씨는 “싱글 다이너가 늘면서 2,4인 좌석만으로는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예약이 밀릴 정도로 인기 있는 레스토랑인 만큼 혼자 온 손님이 큰 자리를 차지하면 손님이나 레스토랑 측이나 빈 좌석을 보며 서로 마음 편하지 않다. 가족 단위가 작아지며 50평대 아파트 수요가 줄고 10, 20평대 수요가 증가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강민구 셰프는 “주변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들도 늘어나는 싱글 다이너를 위해 바가 꼭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압도적으로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식생활, 취향을 위한 소비의 영역으로

밍글스 매니저 김민성씨는 바 덕분에 모두가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싱글 다이너가 부쩍 늘어 요즘은 점심, 저녁에 꼭 한 명 이상 싱글 다이너의 예약이 있다. “바 위치가 주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마치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ㆍ레스토랑의 주방 안 또는 바로 앞의 특별한 좌석)처럼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거든요. 혼자 식사하기 때문에 음식에도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홀 스태프와 더 많이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어 요리에 대한 설명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고요.” 주방 밖으로 자주 나오지 않던 강 셰프도 혼자 온 손님을 위해 손수 음식을 들고 나와 설명해 준다고 한다. 싱글 다이너를 위한 특별 서비스인 셈이다.

서울 논현동 파인 다이닝 '밍글스'의 바(Bar) 좌석.
서울 논현동 파인 다이닝 '밍글스'의 바(Bar) 좌석.

대관절 싱글 다이너들이 혼자 고가의 레스토랑에 와서 식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영화 한 편 같이 볼 친구는 흔하다. 그러나 고가의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을 함께 볼 친구는 흔치 않은 법이다. ‘치맥’할 친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다이닝을 함께할 친구는 흔치 않다. 취향을 위한 소비이기 때문이다. 다이닝은 이제 취미생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취미는 각자 취향의 영역이다. 취미생활 비용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겉으로 드러난 비싼 가격만 보일 수밖에 없다. 숫자 뒤, 가격표 뒤의 가치를 봐야 한다. 그 가치를 기꺼이 구매하는 누군가에게는 값비싼 식사 한 끼가 두 시간 동안 VIP석에서 오롯이 홀로 집중해 즐기는 한 편의 음식 공연인 셈이다. 공연의 VIP석이, 건담 프라모델이나 아이언맨 피규어 인형이 단지 사치가 아닌 것과 같다. 마음 편히 싱글 다이닝을 할 만한 환경이 갖춰진 레스토랑은 아직은 소수다. 단골이 된 싱글 다이너들은 대개 코스 요리에 맞춘 와인 페어링 코스까지 선택해 완벽한 식사를 즐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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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보다 가치, 새로운 가성비의 정의

각자의 취향과 별개로, 음식의 가격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등장했다. 가격에 우선하는 가치다. 음식의 가치가 가격에 걸맞은가 아닌가가 흔히 이야기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다. 우리의 가성비는 배고프던 시절 ‘가격 대비 푸짐한 양’에서 ‘가격 대비 좋은 맛’으로 성장했고, 이제 ‘가격 대비 가치’의 단계로까지 왔다. 가치를 따져 더 나은 만족도를 얻는 소비의 태도가 식생활 전반에도 퍼져나가고 있다.

30대 윤수연(가명)씨는 대형 마트에서 마감 세일 스티커가 붙은 식재료만 공략하던 소비 패턴을 최근 바꿨다. “남편과 단 둘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싼 것 아무거나 사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는 주말에 한두 끼 먹는데 예산이 좀 더 늘더라도 더 맛있고 더 품질 좋고 몸에 좋은 식재료를 선택하기로 했죠.” 윤씨 부부는 요즘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 매장에서 장을 본다. “소포장된 제품이 있어서 지출 부담이 크지 않아요. 친환경, 유기농 같은 말을 맹신하지 않지만 기분만이라도 한결 안심이 되고요. 식재료비 지출이 약간 늘어난 대가로 얻은 만족도가 훨씬 큽니다. 그래도 절약이 필요해질 때는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게 되겠죠.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다만 그때는 좀 서글픈 기분이 들 것 같아요.”

프리미엄군에 속하는 식재료를 파는 온라인 푸드마켓들도 젊은 세대에서 부쩍 인기를 얻고 있다. 그중 하나인 ‘마켓컬리’의 매출은 지난해 2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2월 한 달에만 30억원을 찍었다. 간판 상품인 ‘본앤브레드 1+ 한우’는 서울 마장동의 유명 식당 제품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1++ 등급의 한우보다 가격대는 낮지만 맛은 더 좋은 1+ 한우다. 물론 대형마트에 가면 낮은 등급의 한우 또는 수입산 소고기를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소비의 흐름이 가치로 방향을 틀며 지출과 만족도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지점을 찾는 소비자가 는 것이다. 이들은 불만족스러운 소비 두 번보다는 만족스러운 소비 한 번을 택한다.

온라인 푸드마켓 ‘마켓컬리’에서 판매하는 ‘본엔브레드 1+ 꽃등심’. 서울 마장동 상인들이 1++ 등급보다 1+ 한우를 더 즐겨 먹는 데서 착안한 틈새 상품이다.
온라인 푸드마켓 ‘마켓컬리’에서 판매하는 ‘본엔브레드 1+ 꽃등심’. 서울 마장동 상인들이 1++ 등급보다 1+ 한우를 더 즐겨 먹는 데서 착안한 틈새 상품이다.

안목, 그리고 취향이 이제 소비의 중요한 준거다. 이런 변화는 단 한 번 사는 인생이니 기왕이면 더 가치 있는 것을 취하는 ‘YOLO(You Live Only Once)’,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한 가치 소비를 강조하는 덴마크발 ‘휘게(Hygge)’ 열풍과 맞닿아 있다. 마켓컬리에서는 기호식품도 성장하는 추세다. 마켓컬리 마케팅팀 이나영씨는 “개인의 휴식을 중시하는 가치 변화에 따라 디저트류와 차류 상품군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래머블, 가난한 세대의 자린고비

‘혼밥’ ‘혼술’, 그리고 ‘일코노미(1인+이코노미ㆍ혼자만의 소비생활을 즐기는 사람)’는 출구 없는 경기침체가 불러온 사회현상으로 정의된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빚어진 흙수저 청년층의 빈곤한 식생활은 ‘웃픈’ 자조담으로 인터넷을 떠돌곤 한다.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 마른 미역을 배불리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한 자취생의 이야기는 거의 유머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돼버렸다. 설마 했던 유머가 혹시라도 다큐일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또는 ‘있어빌리티’라는 말을 아는가. ‘인스타그래머블’은 젊은층이 즐겨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사진이 나올 만하다는 의미다. 현실은 어떻든 사진이 잘 나오면 그만이다. ‘있어빌리티’도 다르지 않다. 현실은 보잘것없더라도 SNS에 올리는 사진만은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다. 허세가 아니라 젊은이들 나름의 YOLO이자, 휘게다.

30세를 앞둔 취업준비생 이주명(가명)씨의 말. “한 번의 만족을 위해 일상의 부실함을 감수하는 것이죠. 평소에는 가장 싼 라면, 가장 싼 커피를 골라 돈을 아끼고 친구들을 만날 때는 정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는 식당이나 방송에 나온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곤 해요.” 인플루언서나 방송이 소개하는 식당이 이들에게는 자린고비의 굴비인 셈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식당에서 들려온 20대들의 대화가 딱 그랬다. “여기 진짜 예쁘다” “난 벌써 인스타(그램)에 올렸어” “요즘 이 사람이 올리는 식당은 진짜 다 힙하더라. 우리 다음엔 이 사람이 올린 이 식당에서 만날까?” “나는 이번 주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온 식당 진짜 가 보고 싶던데!” 굴비를 매달아 놓고 맨밥을 먹는 심정으로 일상을 희생하고 단 한 번의 가치 소비로 만족을 얻는다.

흙수저 위에 올릴 것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일상의 부실함을 감수하고 단 한 번의 만족을 택한다. 인스타그램과 먹방이 그들에게는 '자린고비의 굴비'인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흙수저 위에 올릴 것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일상의 부실함을 감수하고 단 한 번의 만족을 택한다. 인스타그램과 먹방이 그들에게는 '자린고비의 굴비'인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불황의 수렁에 가장 먼저 빠진, 숨찬 20대들만의 허세로 치부하기엔 더 광범위한 세대의 문제다. ‘수요미식회’ ‘백종원의 3대천왕’은 왜 ‘쿡방’ ‘먹방’ 열풍이 소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유효할 수 있을까? 방송은 실패하지 않는 식당이라는 보증이며, 만족스럽고 성공한 소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유명한 식당에 다녀왔다는 최소한의 만족은 얻는다. 불황에 지친 우리들에게는 가치를 확신할 수 없는 소비야말로 사치요, 낭비가 됐다. 행복 추구를 위한 가치 소비의 이면에는 행복 추구가 허락되지 않은 이들의 씁쓸한 현실도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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