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 연구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부 개혁 관련 설문조사 등을 진행해 외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려 하자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가 위축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원행정처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판사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진상 조사와 판사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신뢰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환골탈태해도 모자랄 법원이 여전히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딱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지난달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 한 법관이 불이익을 받을 우려 ▦대법관 제청 절차 수정이 필요한지 여부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 재논의 필요성 ▦판사회의가 적절하게 기능하는지 여부 등을 물었다. 대법원장의 권위를 건드리는 민감한 문제 제기이긴 하지만 그 동안 여론은 물론이고 법원 내에서도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중요한 쟁점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의 사법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절실한 개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관 400명 이상이 회원인 법원 내 최대 연구단체의 이 같은 작업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연구회 소속 판사에게 설문조사 결과가 크게 보도되지 않도록 하고 연구회 활동도 축소시킬 방안을 강구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에 해당 판사가 사직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자 예정됐던 법원행정처로 인사이동 후 두 시간 만에 그를 이전 근무처인 수도권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사문화 규정을 이용해 인권법연구회 회원 숫자를 줄이려 하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혀 유보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이런 처사는 개혁 방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선 반민주적일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진상조사를 요구한 판사들의 목소리 중에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 요구가 있었던 것이나 대한법학교수회가 성명에서 “헌법을 위반한 중대 범죄”라고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9월에 임기를 마치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6년 전 취임식에서 “너무 늦기 전에 재판제도와 절차, 심급 구조, 법원 조직, 인사 제도 등 기존의 사법 제도에 관하여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법원에 개혁이 필요하다면 모든 법관들과 고뇌를 함께 나누며 제도를 고쳐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초심에 비추어 이번 사태를 되짚어 보고 법원 안팎의 사법 개혁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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