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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엄마가 퇴근한 후

입력
2017.03.0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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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저녁 약속은 잡지 않는 것으로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일을 하다보면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잡힌 회식에서 과음을 했다. 집에 늦게 들어와서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니 유치원 다니는 딸이 엄마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한다.

“엄마, 엄마, 어젯밤에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엄마 왜 늦게 들어왔어? 엄마 너무해!!”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안아주며 토닥거리지만 너무 피곤하다.

"늦게 와서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오늘은 꼭 일찍 들어올게.“

지친 몸으로 회사에 갔다가 퇴근을 한다. 아이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서둘러 집으로 향하다가 문득 생각을 한다. ‘아, 이제 집에 들어가면 쉬지 못하는데...’

하루 종일 엄마가 고픈 아이는 엄마를 만나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몸도 마음도 지친 엄마는 쉬고 싶다. 조금 어릴 때는 TV나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엄마가 짬짬이 쉴 수 있었는데, 이제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엄마와 하고 싶다. 그림도 같이 그리고, 역할놀이도 하고, 숫자공부도 하고, 엄마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잠시 목욕탕이라도 들렸다 갈까 하는 유혹을 느꼈지만, 아이와 약속한 게 마음에 걸려 집에 들어왔다. 아이는 신나서 펄쩍펄쩍 뛰며, 바로 손을 잡고 같이 할 놀이를 얘기한다. 신나게 유치원에서 가져온 종이 접기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는 집중하기 어렵다. 몸은 피곤하고, 회사 일로 문자는 들어오고, 새 학기를 맞이한 큰 아이 학교 준비물과 숙제도 챙겨줘야 하고, 엄마들 카톡방에서 준비물과 일정을 묻는 이야기도 오고 가는데 답장도 해줘야 한다.

아이 준비물 중 챙기지 못한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 아직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도 해야 하고, 회사 일로 물어보는 문자에 답변을 해야 하고... 잠시 엄마가 딴 생각을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이내 딸은 화를 낸다.

“엄마는 나랑 같이 노는 게 싫구나. 왜 핸드폰 보고 있어?”

헉... 자신과의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아이에게도 정말 싫은 일이구나. 하지만 나에게 온 문자에 답장은 해줘야 하는데.. “아, 미안미안... 엄마가 꼭 답장을 해야 해서... 이것만 보내고 놀아줄게.” 몇 시간을 같이 놀고 이런저런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가 지쳐버린 나머지 결국은 딸을 울리고 말았다.

“엄마, 너무해!! 엄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엄마 정말 미워!!”

“엄마가 오늘 너무 힘들어. 엄마 좀 쉬면 안 될까? 오늘은 좀 봐줘.”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다가 울다 지친 딸을 달래고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다 처리하지 못한 일들과 내일 해야 할 일들이 맴돈다. 부쩍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회사와 사회에서 맡은 다양한 역할을 놓지 못하고 좀 더 빠르게 이런 업무들에 대응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가 전부인 여섯 살 딸아이에게 엄마의 다양한 역할을 이해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회사를 떠나서 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후에는 더 이상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로 신경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는 이름으로 퇴근 후 SNS로 업무를 논의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움직임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논의들도 오가고 있다. 말로는 좀 더 행복한 육아를 위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퇴근 후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놓지 못하는 내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퇴근 후에는 일에서 자유로워지고 연결되지 않을 권리, 나부터 찾아가야 할 텐데. 하지만 아주 가끔씩 회식은 엄마에게도 필요하다고!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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