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1+1이 1이 될 수 있을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쉼 없는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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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1+1이 1이 될 수 있을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쉼 없는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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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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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을린 사랑’(2010)이 상영됐을 때다. 당시 제목은 ‘그을린’이었다. ‘시네마 투게더’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게 됐는데, 10여 명이 조를 이뤄 3일 동안 하루에 두 편씩 다 함께 영화를 보는,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기꺼이 참여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빡빡한 행사였다. 영화감독이나 평론가, 배우, 소설가가 조장을 맡았고, 나 역시 조장이 되어 사람들이 볼 영화를 골라야 했다. 정보가 적었기 때문에 영화 소개 책자만으로 영화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글 읽기는 자신 있었으므로 책자에 적힌 뉘앙스를 요모조모 살펴가며 여섯 편의 영화를 골랐고, 가장 마지막에 본 영화가 바로 ‘그을린 사랑’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각이 지금도 선명하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다리가 후들거렸고, 목이 말랐다. 나는 조장이었으므로 조원들을 인솔해 밖으로 나간 다음, 다 함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보람찬 하루를 끝내야 했다.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 골똘하게 더 깊이 생각해야만 할 것 같았다. 충격적인 반전의 의미와 무덤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한번 더 되새기고 싶었다. 알아내고 싶었고, 음미하고 싶었고, 꼼꼼히 따져보고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수많은 물음표들이 내 머리 위에 떠올라 있었다.

'그을린 사랑'의 주인공 나왈(루브나 아자발)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견뎌내나 아들이 비극의 씨앗임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을린 사랑’은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내전을 벌이고 있는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나라 이름이 거론되진 않지만) 레바논에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여인 나왈 마르완에 대한 가슴 아픈 기록이다. 나왈의 딸 잔느는 어머니의 흔적을 쫓다가 충격적인 진실과 직면하게 된다. 나왈은 쌍둥이 동생 시몬에게 이렇게 말한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이 될 수 있을까?”

영화를 본 사람은 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슨 영문인지 알 도리가 없는 문장이다. 잔느는 수학자다. 1 더하기 1이 2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 1 더하기 1이 1이 되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잔느는 1 더하기 1이 1이 될 수도 있다는,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수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흐느껴 운다. 더듬어서 파악하고 싶지만 형체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무너져 내린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무너져 내렸다.

빌뇌브 감독의 영화에는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불가해한 세상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알 수 없다. 빌뇌브 감독의 영화에서 흐르는 시간은, 알 수 없어 보이지만 알고 싶은 세계에서 출발해 알고 싶지만 끝내 알아낼 수 없는 세계로 끝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대체 뭘까?

영화 '프리즈너스'의 주인공 켈리(휴 잭맨)는 아이가 실종된 뒤 이성을 잃는다. 유력한 용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백을 받으려 하나 사건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 있다.

보스턴 여아 실종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프리즈너스’(2013)는 두 주인공이 사건의 안개를 헤쳐 나가는 영화다. 실종된 아이의 아버지 켈러는 안개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이고, 형사 로키는 두 손을 앞뒤좌우로 뻗어 주변을 살핀 후 천천히 탐색하는 쪽이다. 두 사람 다 안개 속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켈러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네 할아버지의 좌우명이 뭐였는지 알아? Be ready였어.”

어떤 일이 닥치든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는다는 것은, ‘Be ready’ 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미리 준비할 수가 없다. 보험을 들고, 앞날을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인간들은 시간과 운명의 한발짝 뒤에서 삶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징징거리며 쫓아가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속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멕시코 마약밀매 조직 소탕이라는 답을 찾아나섰다가 삶의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미국 국경지대의 마약 조직 소탕 작전을 그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의 주인공 케이트는 시종일관 어리둥절해하며 엄청난 폭력을 목도한다. 케이트는 선과 악이 나뉘어진 세계가 아니라 악과 악이 뒤엉켜 있는 듯한 곳으로 끌려간다. 조용히 따라오기나 하라는 압력을 받으면서도 케이트는 계속 말한다.

“나는 알아야겠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대체 당신들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야겠다는 말이다.

빌뇌브 감독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계속 실패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알아야겠다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이해하지 못하면 여기서 한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고 버틴다. 1 더하기 1이 1이 되는 세상이지만, 늘 준비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그의 영화를 지지한다.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물음표는 점점 더 늘어나지만, 나는 기꺼이 그 물음표를 아래로 구부려 무언가를 낚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다.

김중혁 소설가·B tv ‘영화당’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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