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야구의 맹주가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김인식(70)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이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2차전에서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네덜란드에 0-5로 영봉패했다. 전날 복병 이스라엘에 1-2로 덜미를 잡힌 데 이어 2연패로 1라운드 탈락, 백척간두 위기에 내몰렸다.
한국이 기댈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은 이미 2승을 거둔 이스라엘이 3전 전승을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대만, 한국이 서로 맞물려 1승2패로 동률을 이루는 것인데 이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A조 최약체로 꼽히는 대만이 8일 네덜란드를 꺾는 기적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김인식호는 짐을 싸야 한다. 한국은 8일 네덜란드가 대만을 꺾고 2승째를 따내면 남은 대만전 결과와 상관없이 탈락한다.
한국 야구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이후 35년 만에 성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를 국내에서 열고 야구 붐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또한 2013년 3회 대회 때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타이중 참사’에서 벗어나, 2006년 초대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던 옛 영광을 되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안방에서 홈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도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치욕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WBC 대회에서 2경기 연속 패한 것도 처음이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대회마다 호성적을 거둬 ‘국민 감독’이라는 칭호를 들었던 김인식 감독의 ‘위대한 도전사’에도 이번 대회 부진으로 흠집이 났다.
전날 이스라엘전에서 10이닝 동안 단 1점을 뽑는데 그쳤던 타선은 네덜란드를 맞아서도 침묵을 지켰다. ‘지한파 투수’ 릭 밴덴헐크(32ㆍ소프트뱅크)의 구위에 철저히 눌렸다. 2013년과 2014년 삼성에서 활약한 밴덴헐크는 시속 150㎞대의 강속구를 앞세워 4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타선이 꽁꽁 묶인 사이 메이저리그 올스타급 내야진을 꾸린 네덜란드의 방망이는 한국 선발 우규민(32ㆍ삼성)을 두들겼다. 1회말 선두 타자 안드렐톤 시몬스(LA 에인절스)가 좌전 안타로 출루하자 텍사스의 기대주 주릭슨 프로파르가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큼지막한 선제 2점포(비거리 125m)를 쏘아 올렸다.
2회말에는 2사 3루에서 시몬스가 1타점 적시 2루타를 쳐 3-0으로 달아났다. 이렇다 할 반격 기회를 잡지 못한 한국은 0-3으로 끌려가던 6회말 2사 1루에서 두 번째 투수 원종현(NC)이 9번 란돌프 오뒤벌에게 좌월 2점 홈런을 얻어맞고 사실상 추격 의지를 잃었다. 이로써 4년 전 대회에서 0-5로 완패를 당했던 아픔을 홈 팬들 앞에서 그 점수 그대로 반복했다.
사실 한국 대표팀의 ‘고척 참사’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김현수(볼티모어)와 추신수(텍사스), 박병호(미네소타), 강정호(피츠버그) 등 빅리거들이 소속팀의 반대와 부상 우려, 사건 사고로 합류하지 못해 역대 최약체 타선을 꾸렸다. 급한 대로 마무리 투수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을 불러들였지만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니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표팀이 두 경기에서 19이닝 동안 낸 점수는 고작 1점이다.
이스라엘전을 마친 뒤 한국 대표팀의 무기력한 경기력에 해외 언론들도 혹평을 쏟아냈다. 일본 스포니치아넥스는 “사상 최약체라는 혹평이 몰아친 첫 경기가 됐다”고 보도했고, 미국 CBS스포츠는 “이스라엘이 한국을 망연자실하게 했다”고 전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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