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두고 말레이시아 정부와 갈등을 빚던 도중 자국 내 말레이 국민의 출국을 금하는 강경 조치를 내놓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즉시 북한인 출국금지 조치로 맞서면서 양국이 사실상 ‘인질극’에 가까운 막장 외교전에 돌입했다. 상대국 대사 추방에 이어 민간인까지 피해가 확산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의례국은 7일 해당 기관의 요청에 따라 (중략) 조선(북한) 경내에 있는 말레이시아 공민들의 출국을 임시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주조(주북한) 말레이시아대사관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내 말레이인 11명을 사실상 억류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를 상대로 '인질극'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나집 라작 말레이 총리는 수시간 만에 성명을 내고 “북한 내 말레이인들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말레이 내 모든 북한인’의 출국을 금지할 것을 경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보복 조치로, 앞서 부총리가 출국 금지 대상을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으로 제한했던 것보다 격상된 조치다. 말레이에 거주하는 북한인은 외교관들을 포함해 1,000여명으로 주로 광산, 건설업에 종사하며 외화벌이 역할을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인질외교’라는 강수를 들고나온 데에는 ‘더 이상 밀려서는 곤란하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치는 말레이 경찰이 “김정남 살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용의자 3명이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나올 때까지 무기한 기다리겠다”고 한 직후 나온 것이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청장은 “5년이 걸리더라도 (대사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제 북한 대사관 주변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대사관 내 인원 파악에 나섰다.
말레이의 북한에 대한 단교 선언도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6일 저녁에는 강철 주말레이 북한대사가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나선 직후 북한 평양주재 말레이 대사관도 철수 준비에 착수했다. 말레이 현지 매체 중궈바오(中國報)는 7일 평양 주재 중국 CCTV 기자를 인용, “말레이 대사관 직원들이 문서를 소각하고 짐을 싸 차에 실었다”며 “7일 아침에는 대사관 앞 말레이기와 아세안기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대사관 내 문서를 파기하고 국기를 내린 것은 사실상 전시 상황이라는 뜻으로, 대사관 철수를 의미한다. 말레이 정부는 10일 내각회의를 소집해 북한과의 단교를 정식검토할 것이라고 말레이메일 온라인이 이날 보도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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