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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입력
2017.03.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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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3.8

시인 조병화가 2003년 8월 별세했다. 한상범의 책 '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는 그의 이름도 있다.
시인 조병화가 2003년 8월 별세했다. 한상범의 책 '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는 그의 이름도 있다.

한상범 이철호가 낸 ‘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패스앤패스)이란 책에는 정치인과 교수, 언론인 등 20여 명이 신문 등 이런저런 지면을 통해 발표한, 전두환과 그의 정권을 찬양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나는 그 책을 인상적으로 읽었고, 언젠가 그들 ‘전두환 체제의 나팔수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적이 있었다. 포기한 까닭은,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부터 어려울 테고 설사 성사된다 하더라도 듣게 될 말이 듣고 싶은 말과 사뭇 다를 것 같아서였다. 그런대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그리 성실하지도 모질어질 자신도 없었다. 이제 그들 중 다수는 세상을 떴다.

시인 조병화(1921~2003)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80년 8월 28일자 ‘경향신문’ 1면에 ‘청렴 온후 참신한 새 출발… 국운이여 영원하여라’라는 제목을 단 전두환 제11대 대통령 당선 축하시를 썼다. “(…) 온 국민과 더불어 경축하는/ 이 새 출발/ 국운이여! 영원하여라/ 청렴 결백한 통치자/ 참신 과감한 통치자/ 이념 투철한 통치자/ 정의 부동한 통치자/ 인품 온화한 통치자/ 애국애족 사랑의 통치자/(…) 이 새로운 영토/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 아, 이 새로운 영토/ 이 출발/ 신념이여, 부동 불굴하여라(…)”

여러 대학 교수와 학장을 지낸 59세 시인 조병화는, 미학적으로만 본다면 차라리 조롱이라 여길 수도 있을 저 시를 썼고, 그 덕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듬해 서울시 문화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 됐고, 다시 이듬해 인하대 문과대학장이 됐고, 이어 부총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그는 1921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나 경성사범과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해 교사생활을 하던 중 49년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표했다. 거의 매년 시집과 수필집을 펴낼 만큼 성실하게 시를 썼고, 개중에는 ‘공존의 이유’(63년 동명의 시집에 수록)처럼 널리 알려진 시도 있다.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그가 저 책이 나오기 한 해 전인 2003년 3월 8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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