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이 잇단 미사일 도발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외교ㆍ안보 대응능력을 시험대에 올렸다. 전날 미국의 한국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 보도에 때를 맞춘 듯 북한은 6일 오전 탄도 미사일 도발을 또다시 감행, ‘트럼프 정권도 무섭지 않다’는 결의를 내비친 모양새다. 지난달 12일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로 출범 한 달이 되지 않은 트럼프 정부를 떠봤던 북한이 미국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화로 기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듭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워싱턴 외교가에선 트럼프 정부 들어 북한이 벌써 두 번째 미사일 도발을 실행하면서 선제타격, 전술핵 배치, 정권전복 등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옵션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중국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밀어붙였을 정도로 미국에 위협인 북한의 무력이 보다 날카로워진 만큼, 대화보다 무력으로 맞서는 대북정책의 명분이 더욱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휴일인 5일(현지시간) 저녁 신속하게 규탄성명을 내놨다. 마크 토너 대변인 대행은 “미국은 북한의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며, 북한 위협에 맞서 가용한 모든 능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과 워싱턴 소식통들은 비록 국무부 논평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지만 북한의 연속 도발을 계기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이 예정보다 일찍 마무리되고 급진적일 것이란 뉘앙스가 충분히 담겨있다고 해석한다. 한 소식통은 “머지않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으로 미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갖출 것이란 우려가 짙어지면서 선제공격을 하거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옵션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내다봤다.
더불어 두 차례나 트럼프 정부를 무력시위로 떠본 김정은 정권에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지 않을 경우 자칫 김정남 암살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린 북한에 추가적인 도발 여지를 줄 수 있다. 때문에 여러 차례 ‘북핵 불용’의지를 표명한 트럼프 정부가 경고 메시지에 그쳤던 지난달 미사일 도발 때와 다른 구체적 대응을 속히 시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의 구체적인 대북정책이 확정되고 실현되는 과정에는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방문이 분수령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틸러슨 장관이 중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수준의 대북 압박 약속을 얻어낸다면 급진적인 정책을 채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역대 정권의 정책에서 벗어나 트럼프 행정부가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내비치는 건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틸러슨 장관이 중국에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듣지 못하면 강경대응을 골자로 하는 대북 정책이 확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피해를 주는 단계적이고 신속한 대책이 실행에 옮겨질 수 있다. 우선 오바마 정권이 길은 텄지만 대중 관계 악화를 위해 채택하지 않은, 북한과 협조하는 중국 기업ㆍ개인을 미국이 경제적으로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의 실행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이 신속하게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가시적 제재 효과는 크지 않지만, 국제적 위신을 떨어뜨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도발에도 불구, 북미 대화 가능성이 전면 부인되는 건 아니다. 역대 정권에서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 정권도 북한과의 협상 여지가 존재하는지 살필 대화에는 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넘지 말라’고 정한 ‘ICBM 발사’ 등 도발을 자제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스팀슨센터 앨런 롬버그 석좌연구위원은 “트럼프 정권이 북한과의 대화가능성을 처음부터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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