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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명성 잃은 한국도자기, 이젠 ‘숙부 vs 조카’ 대결 조짐

입력
2017.03.0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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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자기실적 추이/2017-03-05(한국일보)
한국도자기실적 추이/2017-03-05(한국일보)

2015년 7월 국내 도자기 산업의 대표 주자였던 한국도자기가 주력 생산기지인 청주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내수 불황에다 외국산 도자기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회사가 긴급 경영조치를 내린 것이다. 한국도자기가 적자를 버티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중단한 것은 창립 72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도자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도자기 시장 1위 업체였다. 1973년 고급도자기의 대명사인 ‘본차이나’를 국산화 하면서 국내 도자기 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이끌어 올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급변화된 시장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국내 도자기 시장은 이미 높은 품질과 유명 브랜드를 자랑하는 유럽산 고급 도자기와 저가 중국산 도자기가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 저하와 단조로운 디자인 등으로 수출 시장에서도 한국도자기 제품은 예전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그 결과 무차입 경영을 자랑하며 해마다 수십억원대 영업흑자를 내던 한국도자기는 2015년 75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결국 공장가동 중단 카드를 꺼내고 말았다.

조카에 밀려 쫓겨났던 젠한국 김성수 회장

한국도자기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젠한국’이라는 사명을 가진 인도네시아산 도자기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이 업체는 한국도자기 창립자 고(故) 김종호 회장의 4남인 김성수(69)회장이 이끌고 있다. 사실 김 회장은 창업주 장남인 형 김동수(81) 회장을 도와 한국도자기를 국내 대표 도자기 기업으로 성장시킨 1등 공신이다. 그는 한국도자기 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며 본차이나를 국산화 하는데 성공했고,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본차이나에 버금가는 ‘슈퍼스트롱’ 기술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김 회장은 기술뿐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1994년 한국도자기 대표이사가 된 김 회장은 적극적인 마케팅과 광고영업으로 한국도자기의 고공행진을 주도했다. 하지만 김 회장과 한국도자기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형인 김동수 회장이 2004년 회사 경영권을 자신의 장남인 김영신(56) 사장에게 물려주면서 김성수 회장은 2005년 한국도자기의 인도네시아 생산법인(한국세라믹)과 한국 판매법인(한국도자기판매)만을 맡아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한국도자기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김성수 회장이 분사 시 조카가 있는 국내 시장에는 주도적으로 진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형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숙부의 귀환…흔들리는 권좌

한국도자기에서 분사한 젠한국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충북 오창 소재의 한국 법인 ㈜젠한국(ZEN)은 분사했던 2005년(6월 결산법인·2005. 7~2006. 6) 매출 71억원에 순이익이 3억 5,000만원에 불과했지만, 2015년엔 매출 212억원에 영업이익 27억원으로 덩치를 비약적으로 불렸다.

김성수 회장의 행보가 주목 받는 것은 회사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김 회장이 최근 한국도자기가 주도하던 국내 시장 공략에 뛰어들면서 숙부와 조카의 대결이 본격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젠한국의 인도네시아 생산거점 한국세라믹은 원래 한국도자기의 수출 전진 기지였다. 한국세라믹은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로얄알버트, 빌레로이앤보흐, 노리다케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해왔다. 하지만 최근엔 젠한국 독자 브랜드를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한국세라믹은 지난해 약 4,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데 업계는 이 공장 생산 물량의 80%가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젠한국의 사세가 커지면서 본가 한국도자기의 권좌를 물려받은 조카 김영신 사장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현재 한국도자기 지분은 창업주 장남 김동수 회장이 31.16%를 확보해 최대주주이다. 그 외 68.84%의 지분은 친족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김성수 젠한국 회장이 지분을 16.1% 확보하고 있다. 2대주주는 창업주의 차남 김은수 전 로렌화장품 회장인데 지분율이 24.3%에 이른다. 반면 김영신 사장의 지분율은 5%가 채 안 된다. 김 사장이 아버지 지분을 모두 물려 받아도 숙부 2명의 지분율을 넘지 못한다. 차남 김은수 전 회장이 김성수 회장을 지지할 경우 김영신 사장은 회사 경영권을 지키지 못한다는 얘기다.

현재 김은수 전 회장의 장녀도 한국도자기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외형상 형이 최대주주로 있는 조카의 회사 경영에 협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은수 전 회장이 동생 김성수 회장과의 사이도 각별해 한국도자기 경영권 향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도자기 업계 관계자는 “차남 김은수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도자기 경영권 향배가 결정된다”며 “한국도자기 직원들이 젠한국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등 분사했던 젠한국이 한국도자기를 합병할 거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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