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젠더 감수성ㆍ성인식 개선 급선무”
지난 3일 성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무조건 출동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제 경찰은 성폭력 신고 접수 후 현장 출동은 물론, 신고 현장에 출입해 관계자에 대한 조사 및 질문을 할 수 있고, 피해자나 목격자 등이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진술할 수 있도록 가해자와 분리해야 하며, 현장조사를 거부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개정안의 내용을 읽을수록 ‘이토록 당연한 법이 왜 이제서야 나왔나’라는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현행법에는 성폭력 신고에 따른 경찰의 현장 출동 의무가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습니다. 출동을 한다 해도 ‘사생활’ 혹은 ‘증거 부족’이란 이유에 막혀 유독 현장조사가 쉽지 않았던 범죄가 성폭력입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도 “성폭력은 즉각적인 사건 개입이 어려워 현장 출입을 통한 범죄 발생 여부나 피해의 심각성을 확인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신속한 초동 대응으로 성범죄 예방을 해야 한다”며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성폭력 신고율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직접 신고한 비율은 전체의 1.9%에 불과했습니다. 피해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20.9%)란 답변을 내놨습니다. 다른 범죄에 비해 은밀한 곳에서 발생하고 내상과 정신적 피해가 심한데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이제 공은 경찰로 넘어왔습니다. 가벼운 의심신고에도 즉각적인 출동과 면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요구됩니다. 가정폭력도 2013년 경찰 출동 의무화 이후 검거건수가 2년 여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인식이 재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신지영 한국여성상담센터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당국에 신뢰를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경찰의 젠더(성) 감수성 및 성인식 개선 등이 가장 급선무”라고 말했습니다.
늦었지만 이 개정안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첫 걸음이 되도록 기대해봅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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