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는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유럽에 거주 중인 터키인들을 상대로 국민투표운동을 벌이면서 유럽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독일과는 언론인 구금을 둘러싸고 에르도안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정면충돌하면서 앙금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은 4일(현지시간) 터키 남부에서 개헌안 지지유세 도중 독일과 네덜란드가 자국 내 터키 개헌안 지지유세를 금지했다며 “비민주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차우쇼을루 장관은 “아무리 방해해도 우리는 유럽에 거주하는 우리 시민들을 만날 것”이라며 더 많은 유세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은 터키 헌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유세가 유럽 내에서 벌어지는 데 불만스런 표정이다. 독일에서는 터키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가게나우와 쾰른의 시당국이 터키 정부의 국민투표 유세를 취소했다. 시당국은 테러 방지를 구실로 댔지만, 집권 기민당의 위르겐 하르트 외교정책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독일에서 비민주적ㆍ비합법적 개헌안을 홍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독일과 터키 사이는 독일 일간 디벨트지의 터키주재 특파원 데니츠 위첼이 터키 당국에 구속된 이후 특히 험악해지고 있다. 위첼은 터키 정부가 테러단체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 지휘관과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테러 선전’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메르켈 총리는 3일 “표현의 자유가 있고 언론은 터키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며 위첼의 석방을 요구했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자(위첼)는 PKK의 일원이자 독일의 요원”이라며 “독일이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유럽 국가들은 터키의 헌법 개정안이 ‘비민주적이고 삼권분립을 위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는 마르크 루테 총리가 직접 “네덜란드는 타국의 선거운동을 할 장소가 아니다. 협력하지 않겠다”며 터키 정부의 유세를 금지했다고 밝혔다. 2016년 쿠데타 직후 에르도안 정권이 추진한 대대적인 ‘반정부세력 색출’로 인해 터키를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는 디벨트지 일요일판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터키는 지난 몇 년간 유럽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인권과 민주주의적 가치가 짓밟혔고 언론자유는 다른 나라 말이 됐다”고 지적했다. 케른 총리는 더 나아가 “터키의 EU 가입도 재고하고 지원금도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터키인들이 다수 거주 중인 독일은 긴장이 유발된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선거운동을 금지한 적이 없고 시당국의 자율적인 판단”이라며 일단 정면대결을 피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교장관은 금주 중 차우쇼을루 장관과 회동할 예정이다. 가브리엘 장관은 빌트지 일요일판에 “독일과 터키의 오랜 친선관계는 현재 발생한 긴장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오해와 증오가 정치적 분열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단 그는 터키 관료들이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품위를 지켜주길 바란다”는 단서를 달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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