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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1평 전셋집, 강릉서 90평 내 집 됐다

입력
2017.03.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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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vs 제주

땅값 급등… 주거비 서울과 비슷

유입인구 늘면서 보육경쟁 치열

#2 서울 vs 강원

강릉 교통ㆍ생활비 뚝… 삶의 질↑

집값 싸 ‘전세난민’서 탈출 가능

제주는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대안이었으나, 이주인구가 너무 몰리면서 정주환경이 악화됐다. 제주 수마포에서 물질을 마치고 이동중인 해녀들. 제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제주는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대안이었으나, 이주인구가 너무 몰리면서 정주환경이 악화됐다. 제주 수마포에서 물질을 마치고 이동중인 해녀들. 제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초거대 과밀도시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불쑥불쑥 치미는 때는 이곳 생활의 고비용 저효율을 절감할 때다. 해가 바뀔 때마다 수천 만원에서 억대까지 뛰는 전세금, 은행 대출을 잔뜩 끌어안고도 면할 길 없는 협소하고 불편한 주거환경, 직주근접(職住近接)은 고사하고 한두 시간씩 인파에 짓눌려야 하는 출퇴근 대중교통까지. 출근 미션만 완수해도 이미 극한 피로에 이르는 나날을 반복하다 보면 심성이 절로 피폐해진다. 수도 서울에 살기 위해 이렇게까지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하는 걸까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아니오’라는 과감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 제주로의 이주를 ‘열풍’으로 만든 젊은이들이다. 중·장년층 은퇴 세대에게 귀촌은 언제나 솔깃한 삶의 대안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울이 아니면 죽을 것처럼’ 여겨온 한국인들의 강고한 통념이 마침내 무너지고 있다는 강력한 사회 변화의 징후이기도 했다. 2002년 노무현 정부의 수도이전을 압도적 비율로 반대했던 국민여론을 떠올려보면 상전벽해다. 이 같은 자발적 대규모 이주는 이촌향도의 물결이 거셌던 산업화 시기를 빼면 한국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2012년 시작된 제주 열풍은 그러나 과포화 상태로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연간 이주인구 2만명 돌파에 중국 자본까지 대거 몰려들면서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제는 제주와 서울 사이에 주거 및 생활 비용의 차이가 무색할 정도다. 강릉과 속초가 제주에 이어 국내 이주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주와 강릉에서의 삶은 각기 그 비용이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서울 Vs. 제주: 비싸다, 붐빈다, 치열하다

“귀촌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서울의 집을 처분하고 돈이 꽤 남아야 한다는 거예요. 남는 돈으로 창업을 하든 농사를 짓든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주는 이제 그게 어려워졌어요. 땅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어요.”

지난해 12월 서울을 떠나 제주 서귀포시 남원리로 이주한 김승현(31ㆍ가명)씨는 6년 전 먼저 제주에 정착한 부모님을 만나러 다니다 ‘제주 마니아’가 됐다. 뭍과 섬을 오가며 ‘언젠가 제주에 가 살면 좋겠다’고 막연히 꿈을 꿔오던 그는 서울서 운영하던 식당 자리를 옮길 때가 되자 과감히 제주행을 결심했다.

“복잡하고 촉박한 게 너무 싫었거든요, 촉박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삶이요. 출퇴근에 한 시간씩 걸렸는데, 꽉 막힌 한강다리 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늘 저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도시의 레고 블록 같은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김씨는 그러나 제주 일대의 가게 자리를 알아보다 지쳐버렸다. 부모님이 이주했던 6년 전에 비해 땅값이 8배나 올라버린 탓이다.

“서울대 앞 원룸 월세가 50만~55만원이에요. 제주도도 똑같아요. 하지만 인건비는 여기가 서울보다 훨씬 싸거든요. 서울에서 200만원 벌던 사람이 같은 직종에서 일해도 150만~160만원밖에 못 버는데, 주거비용은 차이가 없으니 삶이 더 열악해지는 사람도 많은 거죠.”

주거비용이 서울에서와 별 차이가 없었던 건 4인 가구의 가장인 30대 A씨도 마찬가지다. 서울서 119㎡(36평)형 아파트를 3억6,000만원에 소유하고 있던 그는 제주로 옮겨와 82㎡(25평)형 아파트를 2억8,000만원에 샀다. 3.3㎡당 가격으로 치면 제주가 오히려 더 비싼 편이다.

어지간한 물품들은 뭍에서 실어와야 해 물가도 비싸다. 서울서 사다가 웃돈 붙여 팔아야 하는 의류나 식기류 같은 공산품은 당연히 서울보다 비싸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차 없이는 다닐 수 없는 곳이지만 휘발유 값도 서울보다 리터당 약 400원 더 높다. A씨는 “해산물, 육류, 채소 등 신선식품이 저렴해 그나마 서울에서의 생활비와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다”며 “바다 보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것 외에 문화생활 할 게 별로 없어 쇼핑이나 영화, 공연 관람 같은 데 썼던 비용은 많이 절약된다”고 말했다.

유입인구가 크게 늘면서 보육 경쟁도 치열해졌다. A씨의 경우, 5세 아이를 사립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3개월이나 대기해야 했다. “제주도에서는 당연히 바로 취학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복병을 만났죠. 부모는 일하러 나가야 하는데 아이가 갈 데가 없으니 상당 기간 발이 묶이게 되는 거예요.”

운영하는 식당이 남원리 바다 앞이라 원 없이 바다를 보는 행복을 매일 누리고는 있지만, 김승현씨 역시 생각보다 치열한 제주에서의 경쟁에 자주 놀라곤 한다. “대부분 음식점, 카페, 게스트하우스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제주는 섬이고 시장이 한정돼 있다 보니 서울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요.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죠. 집값도 더 쌌을 테고, 초기 이주비용도 별로 없고, 경쟁도 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서울 Vs. 강릉: 가깝다, 싸다

제주와 달리 강원 해안도시로의 이주 붐은 눈 밝고 촉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비용 절감의 메리트가 상당하다. ‘떠났다’는 홀가분한 느낌, 이국적 자연풍광은 제주보다 덜하지만, 집값이 아직은 싼 것이다.

2015년 강릉으로 옮겨간 30대 후반 B씨는 서울에서 맞벌이 아내와 함께 전세 보증금 1억6,000만원의 11평 다세대 빌라에 살았다. 꼭대기층의 빌라는 사실상 옥탑방에 가까웠다. 전세 난민의 운명이 B씨 부부라고 피해가지는 않아 2년마다 새 집을 찾아 헤매는 일이 반복됐다. 2015년에는 월세 전환의 파고마저 들이닥쳐 어디 쓸 데도 없는 보증금 4,000만원을 돌려받고선 매달 30만원을 따박따박 월세로 내야 했다. 턱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오른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이것은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강릉에서 자영업을 해보자고 결의한 부부는 전세 보증금 1억6,000만원에 부부가 9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합치고 약간의 은행 대출을 받았다. 그렇게 마련한 2억500만원으로 30년 된 단독주택을 샀다. 무려 대지 90평, 건평 50평짜리 집이다. 낡은 집이라 수리할 곳이 많긴 했지만 서울의 11평짜리 다세대 주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삶의 질이 높아졌다.

“이층집을 통째로 사용해서 전기, 수도요금은 서울보다 1만원 정도 더 나오긴 해요. 하지만 관리비가 안 나오죠. 초반에 인테리어 비용으로 돈을 좀 쓰고 최근에도 방수공사를 하느라 200만원이 들긴 했지만, 11평 빌라에 매달 월세 내던 것에 비하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강릉도 물가가 싸지는 않다. 공산품과 생필품 상당수가 제주와 마찬가지로 수입품이다. 하지만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외식이 줄어들었다. 부부 합산 월 50만을 쓰던 식비가 강릉에 와서는 25만원으로 줄었다. 교통비도 훨씬 적게 든다. 강릉은 시내 대중교통 체계가 발달하지 않아 자가용이 필수지만, 서울에서 쓰던 25만원보다 10만원이나 줄어들었다. 정주하는 삶,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삶 덕분이다.

“강릉에 와서 생활비가 많이 줄었어요. 직장인에서 식당 자영업자로 바뀌면서 생활 패턴이나 지출 목적 등이 달라진 영향도 있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긴 덕분이죠. 서울서 영화 보고 전시 관람하고 여행 다니던 비용이 30만원이었는데 강릉에서는 5만원으로 훅 줄어들었죠. 여기서는 바다 보고 안 가본 명승지나 관광지 훑어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문화생활이 되니까요.”

늘어난 비용도 있다. B씨의 아내가 문화센터에 다니며 리본공예 코스를 수강하면서 6개월치 강습비와 재료비로 총 15만원을 쓰게 된 것이다. 촌각을 다투며 정신 없이 살던 서울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다. 차분히 시간을 들여 평소 하고 싶던 일을 해볼 수 있는 자유. 이런 돈이라면 B씨 부부는 얼마든지 아끼지 않고 쓸 생각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강릉=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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