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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가 아파하는 이유는 정체성 탓이 아니다”

입력
2017.03.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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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제17회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을지로입구와 명동, 롯데백화점을 지나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6월 제17회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을지로입구와 명동, 롯데백화점을 지나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16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15년 8월 28일 기독교단체 회원 등이 행사장인 서울광장 인근에서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6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15년 8월 28일 기독교단체 회원 등이 행사장인 서울광장 인근에서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들이 일반인에 비해 자살 생각과 시도 비율이 월등하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최근 차별금지법의 ‘성적 지향’ 조항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불거진 가운데 나온 분석이어서 주목된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팀은 지난 달 26일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한국 성인 LGB(레즈비언ㆍ게이ㆍ바이섹슈얼) 건강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성소수자 자살예방프로젝트 마음연결’과 함께 진행된 이번 연구는 만 19세이상 한국의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2,34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12월 사이 온라인 상에서 이뤄졌다. 국내 성소수자들의 건강과 관련한 설문으로는 이번이 최대 규모다.

성소수자 자살 시도, 일반 인구보다 9.25배 높아

이번 조사에선 성소수자들이 일반인에 비해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한 비율이 10배에 가까운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1년간 성인 LGB의 자살 충동은 일반인에 비해 7.51배 더 많았다. 무엇보다 이 기간 동안 성인 LGB의 자살 시도 비율은 일반인에 비해 9.25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 심각성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게이의 자살 시도 비율은 일반 남성에 비해 18.75배나 더 많았다. LGB의 우울증상 역시, 일반인에 비해 약 4.76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류 문화 구성원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란 두려움도 LGB의 자살 충동 증가로 이어졌다. ‘고용주는 성소수자를 뽑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등 일반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을 배제할 것이라고 예상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 생각을 2배 가까운 1.83배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사회가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과연 이들의 기우일 뿐일까? 지난 1년간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답변은 응답자 중 남성의 경우 18.3%, 여성은 26.1%에 달했다. 그리고 차별 경험이 있는 LGB 중 남녀 모두 70%이상이 차별을 당하면 ‘참거나 무시한다’고 답했다. 차별을 당하는 장소로는 학교(35.5%)와 거리나 동네(29.3%), 직장 혹은 일터(24.6%) 등을 꼽았다.

성정체성 때문에 차별과 폭력을 실제로 당한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은 더 자살과 근접했다.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성인 일반 인구는 4.89%에 달한다. 그런데 LGB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당한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경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경험 ▦언어폭력ㆍ신체적 폭력ㆍ성폭력 등 사회적 폭력 중 한 가지라도 경험한 경우에는 일반 인구에 비해 7배나 더 많은 34.2%가 자살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폭력의 경험 없이 자살 생각을 한 LGB 비율 23.1%보다 11%이상 높은 수치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폭력이 이들을 병들게 하는 셈이다.

성소수자 건강실태를 조사한 김승섭(맨 오른쪽)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가 이번 설문 조사를 함께 진행한 연구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승섭 교수 제공
성소수자 건강실태를 조사한 김승섭(맨 오른쪽)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가 이번 설문 조사를 함께 진행한 연구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승섭 교수 제공

“게이여서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 때문에 아픈 것”

이번 연구를 주도한 김 교수는 “성소수자여서 자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배제하는 사회 때문에 자살 생각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결국 동성애자여서 아픈 게 아니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편견을 두려워하는 성소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에도 의료진이 건강상태를 진단할 때 자신의 성적지향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한다”며 “그 두려움은 성소수자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회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최근 거세게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애는 질병이다’,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김 교수는 “그런 주장들은 한국을 벗어나 국제정신과학회에 가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논쟁의 여지조차 없는 이야기”라며 “의과대학에서 쓰이는 모든 정신과 교과서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명확히 정의하고 치료법도 존재할 수 없다고 정리가 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어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 유럽에서는 트랜스젠더 부부 연구로까지 성소수자 건강 주제가 확장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비과학적, 비윤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동시에 당신들의 혐오와 차별이 성소수자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해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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