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엔 칭다오!” 2015년 배우 정상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양꼬치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오늘 양꼬치 어때?”는 몇 년 전만 해도 유별나게 들렸으나 요즘은 “삼겹살 먹으러 갈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이한 이야기가 됐다.
양고기 주 수입국인 호주 축산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으로의 양고기 통관량은 2014년부터 시작해 해마다 껑충껑충 뛰고 있다. 2013년 4,167톤이었던 것이 2014년엔 6,144톤, 2015년에는 7,775톤, 2016년엔 1만598톤으로 증가했다. 10년 전인 2007년엔 2,645톤에 불과했다. 이제 양꼬치를 먹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다. 맵싸한 즈란(커민ㆍ중국 등에서 널리 쓰이는 향신료)의 보위 덕택에 양꼬치가 익숙해지자, 양고기에 대한 저항감이 줄면서 양고기가 새로운 고기 취향으로 자리 잡았다. 소고기, 돼지고기가 아닌 ‘제3의 붉은 고기’가 찾아온 것이다.
머튼, 램, 로깃… 알고 먹자
‘네이처스’는 18년 전부터 양고기를 수입한 업체다. 정문석 대표는 “당시 양고기는 몽골,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소비했다”며 “한국인이 찾는 식당 거래처는 서울 이태원의 ‘강가’나 마포의 ‘램랜드’ 등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중국 동포들이 늘면서 양꼬치집도 하나 둘 나타났다. 서울 가리봉동, 대림동, 건대 앞, 경기 안산 등 중국 동포 밀집 지역 위주였다.
양고기는 크게 램(Lamb)과 머튼(Mutton)으로 구분된다. 나라마다 구분은 다르지만, 대개 1년 미만의 어린 양이 램이라 불린다. 그보다 더 어리면 ‘밀크 램’, ‘베이비 램’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5~6개월짜리는‘스프링 램’이라고 부른다. 돌을 지난 양은 머튼으로 불린다. 나라에 따라서는 1년 7개월을 넘긴 것을 머튼으로, 1년에서 1년 7개월까지의 양을 ‘호깃(Hogget)’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양고기 수입 초기에 양꼬치집들은 머튼의 ‘트렁크(여러 부위의 살코기가 섞인 저렴한 양고기)’를 썼다. 사람들이 양꼬치에 맛을 들이면서부터 램을 주로 쓰게 됐다. “10년쯤 전부터 양꼬치집에서 램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경성 양꼬치’ ‘호우 양꼬치’ 등 한국 사람들도 즐겨 찾는 체인점이 생기면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었다.” 정 대표의 설명이다.
세월이, 나이가 죄인가? 월령에 따라 양고기를 이토록 냉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양고기의 독특한 향 때문이다. 초식 동물인 양은 풀을 많이 먹고 성체가 될수록 육색이 붉어지고 향이 짙어진다. ‘스카톨’이라는 화학물질이 체내에 쌓일수록 향은 심해진다. 이 때문에 도축 전 마지막 약 한 달은 곡물만 먹여 향을 줄이기도 한다. 어린 양고기일수록 밝은 살결이 분홍빛이고 특유의 향이 없다. 물론 근육 발달도 적어 육질도 부드럽다. 한국 사람 대부분이 양고기 향에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은 그간 경험한 양고기가 머튼이기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머튼의 짙은 향은 수퇘지의 고릿한 누린내 또는 방귀 냄새 등 나쁜 기억과 연결돼 있다. 즈란과 고춧가루 등 강한 향신료를 찍어 먹는 양꼬치가 양고기 냄새 트라우마를 1차적으로 치료했다고 볼 수 있다.
양고기 향은 무죄!
그런데 잠깐, 양고기 냄새는 정말로 두려운 것일까? 중국 동포들이 즐겨 찾는 양꼬치 등 양고기 전문점 중에는 머튼을 선호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잠시 뒤에 얘기할 칭기스칸 양고기 요리는 일본 홋카이도의 대표 음식인데, 그곳에서도 연령대가 높은 애호가들은 밍밍한 램 대신 향이 강한 머튼을 찾는다. 익숙하지 않을 뿐, 익숙해지면 양고기 향이 악취가 아닌 향기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향 없는 내장탕이나 설렁탕이 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양고기 역시 고유의 향은 그 자체로 인정해 줄 필요도 있다. 익숙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대부분 물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양고기는 다른 두 가지 형태로도 나뉜다. 냉동육과 냉장육이다. 네이처스는 국내 최초로 냉장 램을 수입했다. ‘이치류’ ‘라무진’ 등 칭기스칸 양고기 전문점이 생겨나면서부터다. 투구 모양의 두꺼운 무쇠 팬에 숯불을 피워 양고기와 함께 양파, 대파, 숙주 등 채소를 함께 구워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로, 원래는 내장을 포함한 모든 부위를 구워 먹는다. 고급 요리로 자리를 잡으면서 냉장 램에 대한 수요도 뒤따랐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머튼은 요즘도 냉동육으로 수입되고 있다.
2010년 11월 개업한 ‘이치류’는 ‘양고기 거부감 치유소’라 불린다. “근막이나 힘줄, 지방 등 향이 강한 부위들을 제거하면 냄새를 줄일 수 있다.” 주성준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서울 한남점까지 직영점 세 곳을 운영하는 그는 고기 손질에 큰 공을 들인다. 주 대표는 “향의 원인인 부위를 제거하면 고기 양도 엄청 줄어든다”며 “지점마다 갈비(어깨쪽 1~4번 갈빗대에 해당하는 숄더랙), 등심, 살치를 30인분씩밖에 판매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부위 별로 맛도 다르다. “갈비는 스테이크처럼 두껍게 나와서 부드럽게 익혀 먹기 좋고 뼈가 붙은 부위라 육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등심은 근육 안에 지방이 끼어 있어 부드럽고 육향이 조금 있다. 살치는 소고기처럼 고소한 부위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도 있다.” 주 대표는 가장 향이 약한 부위로 등쪽의 목 아래의 살치를 꼽았다.
양고기 전성시대
중국식 양고기 요리인 양꼬치, 일본식 양고기 요리인 칭기스칸이 양고기 시장을 이끄는 셈이다. 중국식 양고기 요리는 요즘 더욱 다양화하는 추세다. 양꼬치도 부위별로 맛을 볼 수 있는 식당이 흔해졌다. 지방이 많아 고소한 갈비도 인기 부위다. 중국 동포 거주지역의 양고기 전문점에서는 큼직한 다리도 통째로 굽는다. 커다란 꼬치에 꿰어 불 위에서 돌려 가며 잘 익은 겉면부터 긴 칼로 저며 먹는다. 훠궈도 빼놓을 수 없다. 알싸하고 얼얼한 마라 육수에 양고기 각종 부위와 채소, 건두부 등을 담가 먹는 중국식 샤브샤브 요리다. 서울 연남동의 중국 음식점 ‘서대문 양꼬치’에서는 양고기 전골을 내기도 하는데, 이 식당의 명성을 만든 대표 메뉴 중 하나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입맛은 중국과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서울 동대문에 가면 양고기의 ‘만국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다. ‘몽골타워’라고 불리는 광희동 뉴금호타워에서는 몽골식 양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2층에 ‘울란바타르’, 3층에 ‘잘루스’가 있다. 소스를 곁들인 양갈비 구이, 양고기 만두, 양고기 볶음 국수 등 몽골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지척에는 우즈베키스탄 식당도 모여 있다. 2003년 문을 연 ‘사마르칸트’ 본점과 1호점, 뒤따라 생긴 ‘사마리칸트’ ‘사마르칸트 시티’ 등이다. 구이, 만두, 수프, 국수 요리 등 몽골식 양고기 요리와 형태나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좀더 서양풍이다. 두툼한 꼬치 요리인 ‘샤슬릭’은 독특한 맛이다.
세계지도를 남쪽으로 훑어 내려와 인도, 네팔, 파키스탄 쪽을 짚어 보자. 이 지역에서도 양고기는 당당한 주재료다. 서울 숭인동과 창신동의 네팔 식당 ‘나마스테’와 ‘에베레스트’는 ‘커리 노포(老鋪)’라 부를 만하다. 각각 2000년, 2002년에 영업을 시작했다. 여러 향신료를 풍부하게 섞은 향긋한 커리에 양고기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도의 서쪽으로 중동, 터키, 지중해 일대를 지나 유럽을 모두 훑어도 양고기는 어디서나 중요한 식재료다. 세계인들이 먹는 양고기인데, 한국식 양고기는 없을까? 있다. 서울 용강동 ‘램랜드’, 방배동 ‘램하우스’, 노량진동 ‘운봉산장’ 등이 대표적이다. 가정에서 양고기는 여전히 낯설다. 수입되는 양고기의 약 98%가 식당에서 소비된다. 호주 축산공사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소매점의 양고기 판매량은 2.5%에 그친다. 양고기가 가정식으로 온전히 편입된 취향은 아니라는 의미다. 부지런한 얼리 어댑터들 사이에선 집에서 양고기를 굽는 일이 흔하다. ‘마켓컬리’, ‘헬로 네이처’ 등 프리미엄 식재료 배달 업체에서 양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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