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계좌서 주식 수차례 사고판 경우, 증여세는 한 번만”
누진세 적용을 피하려고 남매가 상대방 자손들에게 주식을 물려줬다면, 직계자손에게 증여한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단암산업 이봉서 회장 남매의 자손 9명이 성북세무서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이 회장 남매가 상대방 자손에게 서로 주식을 물려준 것은 결국 직계자손에게 직접 주식을 증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 회장 남매는 1999년 각자 자손 9명에게 회사 주식 일부를 상속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주식을 직계자손들에게 물려줬을 뿐 아니라, 여동생의 자녀 즉 조카들에게도 일부 물려줬다. 여동생도 이 회장 자녀에게 주식 일부를 교차증여 했다. 이렇게 되면 직접증여와 같은 효과를 얻으면서도 직계후손에게 주식을 줄 때 매겨지는 누진세 부담은 줄일 수 있었다.
세무당국에선 이런 방식의 교차증여를 사실상 각자 자녀들에게 주식을 물려준 것과 똑같다고 판단해 누진세가 적용된 세금을 물렸다. 그러자 주식을 물려받게 된 자손 9명은 세무당국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교차증여로 이 회장 남매는 각자 자손에게 주식을 직접 물려준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면서도 누진세율 적용은 회피했다”며 “이런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교차증여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수 차례 아들 명의로 주식계좌를 만들어 주식을 사고 팔았더라도 증여세는 한 차례만 내면 된다는 판단도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장기형 전 대우전자 대표의 아들 장모(44)씨가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명의신탁이 발생할 때마다 증여세를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세무당국이 부과한 증여세 6억9,460만원 중 4억6,363만원은 무효라는 취지로 장씨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장 전 대표는 2005년 아들 장씨 명의로 증권계좌를 만들어 2007년까지 모두 4차례 주식을 사고 팔았다. 세무당국은 장 전 대표가 증여세를 회피하려고 아들에게 주식을 명의신탁 했다고 보고 4차례 거래 각각에 모두 증여세를 부과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명의신탁된 주식이 매도된 후 그 대금으로 다시 주식을 사들여 명의신탁한 경우에 각각에 세금 규정을 둘 경우 지나치게 많은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밝혔다. 명의신탁 주식 매매대금으로 과세가 됐고 이후 거래된 주식이 최초로 거래된 주식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증여세를 다시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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