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애니칼럼] 회식 때 도시락 싸간 적 있나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애니칼럼] 회식 때 도시락 싸간 적 있나요?

입력
2017.03.01 14:00
0 0

채식을 실천하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외식할 때이다. 스스로 요리를 해 먹을 때는 채식 재료만 골라서 요리를 하면 되지만, 밖에서 식사할 때는 채식 식단을 고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채식 전문 음식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국 음식점 찾기만큼 어렵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이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채식인 중에서는 외출할 때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정성이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도시락을 싸기 어려울 때 내가 자주 이용하거나 주위에 권하는 음식점은 김밥집이다. 흔하디 흔한 게 분식집이니 김밥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고, 김밥에는 각종 채소가 골고루 들어 있으니 영양가도 높다. (사실 김밥은 밥의 양도 많고 참기름도 발라져 있어서 칼로리를 걱정해야 하는 음식이다) 문제는 김밥에 햄이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인데, 김밥을 시킬 때 햄은 빼달라고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채식을 실천하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외식할 때이다. 채식 식단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채식인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채식을 실천하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외식할 때이다. 채식 식단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채식인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비빔밥도 좋은 메뉴이다. 비빔밥에도 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도 미리 빼달라고 말해야 한다. 육회 비빔밥이 나오면 육회를 빼고 먹으면 되는데, 육회 때문에 비싼 육회 비빔밥에서 이러면 손해 막심이다. 가장 골치 아픈 경우는 볶은 고기가 들어 있는 비빔밥이다. 볶은 고기를 접시에 따로 담아 주면 기호대로 넣어 먹으면 좋을 텐데 왜 처음부터 고기를 넣어서 주는지 잘 모르겠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상관없이 고추장을 듬뿍 넣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내 한 항공사의 기내식에서도 고기를 처음부터 넣어서 주던데, 외국에도 건강한 채식 메뉴로 널리 알려진 비빔밥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생각해 볼 만한 점이다. 음식점에서 비빔밥에 주문 전에 고기를 빼달라고 말해도 넣어서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빼달라고 여러 번 부탁해야 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가 남아 있다. 밖에서 혼자 먹는 게 아니라 여럿이 같이 먹을 때이다. 한국에서 채식인이 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 회식이다. 회식에서 내가 갑의 위치라면 채식 전문 음식점에 가거나 채식 메뉴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채식 전문 음식점은 술도 팔지 않아서 회식 장소로 적당하지도 않다. 술에는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지만 아마 채식이 술안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보다. 채식인에게 일반 음식점은 난관이다. 고깃집이라면 오히려 낫다. 쌈에 밥을 싸 먹어도 되고 버섯을 시켜서 구워 먹어도 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메뉴를 파는 음식점이라면 비빔밥을 위에서 말한 방식대로 시켜 먹으면 되고, 된장찌개를 육수 없이 끓여달라고 하거나 페스코 채식인(pesco-vegetarian, 육식은 하지 않지만 물고기와 동물의 알, 유제품을 먹는 채식주의자)이라면 멸치 육수 된장찌개를 먹으면 된다. 가장 골치 아픈 곳은 오리구이집처럼 한 가지 메뉴만 파는 음식점이다. 이런 데는 쌈도 없고 비빔밥도 없고 된장찌개도 없다.

한국에서 채식인이 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회식이다. 일부 메뉴는 고기를 빼고 먹으면 되지만, 채식으로 먹을 만한 게 없는 음식점은 채식인을 난처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 채식인이 되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회식이다. 일부 메뉴는 고기를 빼고 먹으면 되지만, 채식으로 먹을 만한 게 없는 음식점은 채식인을 난처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채식으로 먹을 만한 게 눈 씻고 봐도 없는 음식점에서는 간장에 밥 비벼 먹는 수밖에 없다. 치킨집에서는 무만 먹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먹는 채식인도 있고, 회식 때도 자기 도시락 싸가서 먹는 채식인도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가는 채식을 실천하기 힘들고, 어떤 면에서는 유별나다고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 채식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채식인이 이런 회식 고민을 가끔 하면 모르겠지만 자주 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 직장에서 회식은 굉장히 잦고 강제적이며 가는 곳도 으레 고깃집이다. 채식의 보편화는 이런 회식 문화의 변화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최훈(강원대학교 교수, 철학,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이전 칼럼 보기:비행기 특별 기내식에 도전해보세요

동그람이 페이스북 바로가기

동그람이 카카오채널 바로가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