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반발에도 강행하더니
이제와서 “공개하면 사교육 유발”
“교과서 반영 한자 공개 안 하면
불안 틈타 사교육 더 팽창할 것”
교육부는 2019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에 단어의 한자 음과 뜻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한자 병기’ 방침을 지난해 12월 확정했습니다. 초등용 한자 ‘후보’ 격인 370자가 공개됐고, 교육부는 이 중 300자를 골라 1월말쯤 공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교육부 관계자는 28일 “아직 검토 중으로 300자가 확정되지 않았고, 확정되더라도 외부에 공개할지는 심사숙고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초등용 한자 300자를 정해 교과서 집필진에게만 공개하거나, 출판사가 제작해 온 교과서에 적힌 한자가 300자 내에 포함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방법 등을 검토 중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초등용 한자 300자를 꽁꽁 숨겨두는 이유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공개하면 불필요한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사교육 과열은 교육부가 2014년 한자 병기 방침을 처음 발표했을 때부터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이 줄곧 제기해 온 문제입니다. 거센 반발에도 결국 강행하더니 이제서야 사교육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교육부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한자 병기 발표로 사교육 시장은 벌써 달아오르는 모습입니다. 어린이 학습지와 한자급수시험 교재 등을 출판하는 장원교육은 지난 27일 초등 1~6학년 전 과목 교과서 어휘의 한자를 풀이한 어휘 전문 학습지 ‘어휘나무’를 출시했습니다. 이 회사는 “초등 교과서 내 학습 용어 90%가 한자”라며 “업계 최초 교과서 어휘전문 학습지”라고 강조했습니다. 교육부의 한자 병기 정책에 따른 사교육 업계의 한자 마케팅이 본격화하고 있는 겁니다.
교육부의 300자 비공개 방침으로 학교 현장의 혼선은 더 커지게 됐습니다. 이미 공개된 300자 후보 중에는 ‘틀 기(機)’ ‘작을 미(微)’ 등 고등학교용 한자가 49자, ‘얽을 구(構)’ ‘젖을 습(濕)’ 등 천자문에도 없는 한자가 15자나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한자들이 최종 300자에선 빠진 것인지, 정부의 주장대로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는 한자들로 300자가 결정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들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고, 이를 틈 타 사교육 시장은 더 팽창할 공산이 큽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용 한자를 선정해 병기를 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으면서 어떤 한자가 선정됐는지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교육부의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 때문에 교육당국의 신뢰가 갈수록 하락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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