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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꾸라지”... ‘저항 트로트’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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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꾸라지”... ‘저항 트로트’ 아시나요?

입력
2017.03.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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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만들고 아내가 부르고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청문회 증인들 발언을 가사로

최순실게이트 신랄하게 풍자

*네티즌 반응 뜨거워

해코지 우려에 녹음 주저하기도

“가사 바꾸라” 협박까지 들어

2탄 ‘엮였어요’도 곧 공개

제2의 '백세인생'이 될 수 있을까? 저항 트로트 '모르쇠'가 화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향해 "뻔뻔 모르쇠"라며 풍자해 '시원하다'는 평이다. 노래를 부른 권윤경은 트로트 가수 최초로 지난달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도 섰다. 뮤직비디오 캡처
제2의 '백세인생'이 될 수 있을까? 저항 트로트 '모르쇠'가 화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향해 "뻔뻔 모르쇠"라며 풍자해 '시원하다'는 평이다. 노래를 부른 권윤경은 트로트 가수 최초로 지난달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도 섰다. 뮤직비디오 캡처

제2의 ‘백세인생’ 열풍? 이외수도 주목한 ‘모르쇠’

“몰라요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뿅뿅 대는 정겨운 사운드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트로트 가수의 노래가 구성지다. 흔한 트로트가 아니다. “본적도 들은 적도 만난 적도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라는 노래를 듣다 보면, 최근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던 장면들이 머리에서 하나 둘씩 떠오른다. 이 노래 뭐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일곱 시간 행적도 올림 머리 사연도 모릅니다”라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한 증인들에 대한 송곳 같은 풍자가 쏟아진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향해선 “내 이름은 법꾸라지, 나는 뻔뻔 모르쇠”라며 직격탄을 날린다.

지난 1월 공개된 ‘모르쇠’는 ‘박근혜 대통령 ㆍ 최순실 국정농단’의 그늘을 들춘다. 효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로 노래하는, 보수적 특성이 강한 트로트에서 시국 풍자라니. 가요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저항 트로트’의 등장에 네티즌의 반응은 뜨겁다. 소설가 이외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온 국민이 함께 불러야 할 노래”라는 글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올리며 곡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모르쇠’의 사이다 같은 국정 농단 풍자가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모르쇠’를 부른 무명의 트로트 가수 권윤경을 ‘광장’에 세웠다. 권윤경은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모르쇠’를 불렀다. 앉아 있던 일부 시민들은 일어나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트로트의 낯선 저항을 즐겼다. 트로트 가수가 촛불집회에 선 건 그가 처음이었다.

“트로트를 안 듣는 젊은이들이 좋아해줘 놀랐어요, 하하하” ‘모르쇠’를 작사 작곡한 유지성씨는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아 “블랙리스트에 오르더라도 문화예술인으로서 할 일이라 생각했다”며 힘줘 말했다. 유씨는 노래를 부른 권윤경의 남편으로, 아내와 함께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저항 트로트 '모르쇠'를 부른 가수 권윤경(오른쪽)과 작곡가 유지성은 "가사 고치라는 협박과 모욕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김종진 인턴기자
저항 트로트 '모르쇠'를 부른 가수 권윤경(오른쪽)과 작곡가 유지성은 "가사 고치라는 협박과 모욕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김종진 인턴기자

‘모르쇠’ 증인들 풍자 트로트 만든 이유

유 씨는 집에서 TV로 국정 농단 관련 청문회를 지켜보며 김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씨 관련 의혹에 “모릅니다”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나” 곡을 썼다. 그는 사흘 동안 청문회 자료를 모아 ‘모르쇠’로 일관한 증인들의 발언을 토대로 가사에 살을 붙였다. 유씨에 따르면 “하늘에서 좋은 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작곡은 피아노를 치면서 멜로디가 쏟아져 금세 끝났다.

국정 농단으로 나라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들의 ‘모르쇠’를 우스꽝스런 트로트에 녹인 건 ‘풍자의 해학’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유씨는 “고상한 가요 대신 관광버스용 뽕짝 디스코로 희화화해 속 시원한 웃음을 주고 싶어 일부러 트로트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옜다 한 번 우습게 당해봐라’는 마음”도 있었다.

부부가 만든 ‘모르쇠’ 뮤직비디오는 ‘키치의 끝판왕’이 따로 없다. 권윤경은 단풍이 가득한 나무 사진을 배경으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우아하게 노래를 부른다. 한 번도 쓰지 않는 두 개의 통기타를 무대 양 옆에 세워두고, 밤업소 무대처럼 조명을 현란하게 써 폭소를 자아낸다. ‘모르쇠’는 서울의 한적한 스튜디오를 부부가 직접 빌려 촌스럽게 찍었다.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점점 기세를 펴고 있잖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쉬운 노래로 촛불을 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시대의 변천사를 노래에 담고 싶은 창작자로서의 욕심도 작용했죠.”(유씨)

“’정규재TV’ 보다 화 치밀어” 저항 트로트 2탄 ‘엮였어요’ 제작

1993년 유씨가 만든 ‘서울 브루스’로 데뷔한 아내는 처음엔 남편이 만든 ‘모르쇠’ 녹음을 거절했다. 권윤경은 “겁이 났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는 노래를 불러 누군가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있는데다, 극우 단체로부터 혹여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권윤경은 일주일 동안 계속된 남편의 설득에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자”하는 작은 마음에서 노래를 불렀다. 주위의 응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부부는 “가사를 바꾸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부터 “머리를 열어 보고 싶다”는 모욕까지 들었다. 권윤경은 “촛불집회 무대에 선 뒤 집 문 잠겼는지 확인하는 일에 노이로제가 걸렸다”는 속앓이도 털어놨다.

걱정도 잠시였다. 유씨는 ‘저항 트로트 2탄’인 노래 ‘엮였어요’를 만들었다. 지난 1월 박 대통령이 ‘정규재TV’와 인터뷰를 하며 “(최순실씨와) 경제공동체라는 것은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말한 걸 보고 화가 나 또 즉흥적으로 곡을 쓰고, 녹음까지 끝냈다. 유씨는 박 대통령 탄핵 인용 여부를 지켜본 뒤 ‘엮였어요’ 음원 공개 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계획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던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부부는 “배신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현 시국에 대한 참담함에 한숨을 쉬었다.

“경제를 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이라 그 밑에서 얼마나 많이 보고 배웠으며 콘텐츠가 많을까 싶었는데... 남은 인생은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음악인으로 살고 싶어요.”(유씨)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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